분양 5일 전부터 노숙 줄 … 부동산으로 뜨는 섬, 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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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제주도의 임대아파트 선착순 분양 현장에 긴 줄이 형성됐다. 분양은 9일부터인데 벌써 300여 명이 줄을 서 밤샐 준비를 하고 있다. [최충일 기자]

8일 제주시 도련1동의 한 임대아파트 모델하우스 앞. 300여 명이 줄을 섰다. 9일 시작하는 3순위 선착순 분양을 신청하려는 줄이다. 분양 5일 전인 지난 4일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끼니 때는 짜장면 등을 시켜 먹고, 밤에는 담요를 덮고 노숙하며 줄을 지키고 있다.

 이 아파트는 1, 2순위 분양 때 미달됐다. 360세대 중 105세대만 나가고 255세대가 남았다. 청약통장을 가진 무주택자로 자격을 제한한 때문이다. 그러다 아무 조건 없이 선착순으로 동·호수까지 지정할 수 있는 3순위 분양이 시작되자 일찌감치 줄이 형성됐다.

 길게 늘어선 줄 뒤쪽으로 검은 등산복을 입은 여성 두 명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바다가 보이는 로열층을 선택할 수 있는 5번과 8번이 있다. 5번 번호표는 370만원, 8번은 350만원이다.” 여성들은 일찌감치 줄을 선 전문 줄서기 업자였다. 이들은 이런 말도 했다. “요즘 제주도 부동산이 뛰고 있지 않느냐. 선생님도 임대아파트에 10년 살다가 소유권을 얻게 되면 처분해 돈 벌려고 왔을텐데, 그러려면 로열층이 더 좋다. 300만원대 웃돈은 비싼 게 아니다.”

 번호표는 아파트 분양업체가 아니라 줄서기 업자들이 임의로 만든 것. 신혼집을 장만할 목적으로 뒤쪽에 서 있던 김모(34·여)씨는 “번호표가 법적 효력이 없다지만 저 사람들이 먼저 와 있던 것은 사실”이라며 “번호표를 사야할 지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 시작 전부터 길게 줄을 늘어서고, 줄 앞부분은 선착순 프리미엄 차익을 노린 전문 줄서기 업자가 차지하고-.’ 제주도 부동산 값이 뛰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제주도 공시지가는 지난 한 해 9.2% 상승했다. 전국 평균 상승률(4.1%)의 두 배가 넘는다. 중국인들의 제주도 부동산 투자가 땅값·아파트값 상승을 부채질했다. 중국인이 소유한 제주도 땅은 2009년 2만㎡에서 지난해 말 834만㎡로 5년 새 417배가 됐다. 같은 기간 보유 토지 전체의 공시지가는 4억원에서 8199억원으로 2050배가 됐다. 면적보다 공시지가가 훨씬 가파르게 늘어난 것은 그간 땅값이 오른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중심가 알짜배기 땅을 중국인들이 많이 사들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외국인이 제주도 부동산에 5억원 이상 투자해 5년 넘게 갖고 있으면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빚어낸 현상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이젠 국내 투자자들도 제주도 부동산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달 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제주시 도련1동의 8필지(2127㎡)를 한 필지씩 따로 분양할 때는 2만1103명이 몰렸다. 평균 경쟁률이 2638대 1이었다. 분양지 한 가운데 있는 1970-4번지(235㎡) 한 필지를 놓고 5142명이 경쟁했다. 제주도 강용석 국제자유도시건설교통국장은“부동산 가격 상승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선착순이 아니라 추첨으로 아파트 입주자 선정하는 것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제주도 땅값 상승은 자연생태 보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제주도와 산림청은 2009년부터 제주도 남부 ‘곶자왈’을 사들였다. 이곳 원시림을 보존하려는 목적이었다. 조금씩 사들이는 과정은 지난해 제동이 걸렸다. 계획한 50만㎡의 절반 밖에 구입하지 못했다. 제주도 측은 “소유자들이 곶자왈 땅 값도 오를 것으로 생각해 내놓기를 꺼렸다”고 전했다.

 농지에도 투기 바람이 불 조짐이어서 제주도는 사전 차단에 나섰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하고 “농업인이 농지를 갖도록 대책을 마련해 농지 난개발과 가격 왜곡을 막겠다”고 말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beno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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