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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지구촌 전쟁은 유일신 종교들이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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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움베르토 에코
작가

지구촌에 전쟁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다. 소규모 국지전 정도가 아니다.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겠다는 근본주의적 욕망이 위험을 뿜어내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물론 ‘샤를리 에브도’ 총격 테러가 터진 프랑스 등 여러 대륙에서 충돌이 발생했다. 성베드로 대성당 꼭대기에 걸린 십자가가 신월기로 바뀐 건 아니지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위협이 벌써 로마까지 육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모든 이슬람교도를 ‘극단주의자’라 몰아붙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IS만큼은 확실하게 ‘극단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나치즘이다. 세계 정복이란 종말론적 목표를 위해 인종 말살 전술을 택한 이들이다. 이에 맞서 세계는 이미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시작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유럽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품게 된 공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대한 두려움과 비슷하다. 당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폭탄이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나는 30년 전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앞으로 유럽의 나라들은 단순한 이민자들이 아니라 국경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전방위로 확대된 ‘글로벌 유목민’의 파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민자와 본토인 간에 새로운 균형이 이뤄질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게 될 것이라 예견했다.

 사람들이 책을 내려놓고 무기를 드는 건 인류사에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지금 지구촌은 성서와 쿠란을 놓고 서로 학살극을 벌이고 있다.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詩)』를 쓴 죄로 이란의 최고 권력자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지 않았는가. 현대사회는 유일신 종교들이 벌이는 거대한 전쟁에 휘말려 있다. 총을 쏘는 전쟁이 아니다. 자신의 경전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위해 어떤 위협도 서슴지 않는 새로운 세계대전이다.

 역사적으로 대륙을 넘나들며 벌어진 큰 전쟁은 늘 유일신 종교에서 시작됐다. 자신이 믿는 신을 내세워 전쟁에 나선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뿐이다. 그리스나 로마가 페르시아나 카르타고를 공격한 건 자신이 믿는 신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토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였다. 피정복자의 신과 맞닥뜨린 그리스·로마인들은 자신들의 판테온에 그 신을 함께 모시는 걸로 문제를 해결했다. “헤르메스라 부르는 신이 있다고? 좋아, 그럼 머큐리로 이름을 바꿔 모시면 되지”란 식이었다. 페니키아인이 섬긴 여신 아스타르테는 이집트에서 이시스, 그리스에서 아프로디테로 이름을 바꿔 숭배를 받았다. 아스타르테 숭배를 막기 위해 페니키아를 침략한 나라는 없다. 반면 초기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한 건 이스라엘의 신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로마가 숭배하는 신의 정통성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다신교 사회라고 전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종교와 무관한 종족 간 분쟁이 대부분이었다. 유럽을 침략한 북방 야만족과 이슬람을 공격한 몽골족은 피정복자들에게 자신들의 신을 강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정복자의 종교로 개종했다. 반면 원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유럽의 야만족이 결국은 같은 신을 모시는 이슬람교도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 신기한 일이다.

 내 눈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를 식민지로 만든 서구 제국주의 역시 기독교의 이름 아래 벌인 또 다른 정복 전쟁이다. 유럽 국가들은 아스텍과 잉카는 물론 원래 기독교도였던 에티오피아까지 기독교로 개종시킨다는 명분 아래 식민지로 삼고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다. 다만 유일신 종교 가운데 유대교만은 예외다. 유대교는 선민의식 때문에 다른 민족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유대교 경전에서 말하는 전쟁의 목적은 ‘선택된 유대 민족’의 땅을 확보하기 위함이지 다른 민족을 유대교로 개종시키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대 민족은 외부의 어떤 사상이나 믿음도 자신의 종교에 통합시키지 않았다.

 나는 아프리카 부두교를 믿는 것이 예수나 무함마드를 내세운 유일신 종교를 믿는 것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브라질로 이식된 종교 ‘칸돔블레’를 내세워 정복 전쟁을 시도한 사람이 없고 부두교에서 죽음의 신인 ‘바론 삼디’(Baron Samedi)가 신도들에게 바다를 건너 남의 땅을 빼앗으라고 종용한 적이 없음을 지적할 따름이다.

 엄청난 영토를 차지했던 중화제국 역시 유일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믿음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유럽이나 미국을 자국 신앙으로 개종시키려 한 적이 없다. 지금의 중국도 서구의 주식을 인수하며 경제 영토를 점령해가고 있지만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진 않는다. 그래서 서구인이 예수를 믿든, 알라나 야훼를 믿든 중국의 경제 이익은 침해받지 않는다. 세속 이데올로기 가운데 유일신 종교에 비견할 만한 건 아마 나치즘이나 마르크스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나치와 소련 공산주의 정권조차 초자연적 존재나 신으로 추종자들을 미혹시키진 않았다. 게다가 이들의 정복 전쟁은 어쨌든 짧게 끝을 맺지 않았나.

움베르토 에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