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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맛집서 웨이터 40년 … 글로벌 브랜드 식당, 아들이 이뤄줬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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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청담점 개소식에 참석한 울프강 즈위너(왼쪽)와 그의 아들 피터 즈위너.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 제공]

이름난 맛집에는 불문율이 있다. 직원이 나가서 같은 메뉴로 식당을 차려 크게 성공한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완전히 똑같은 맛을 구현한다 하더라도 원조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맛 뿐 아니라 고유의 분위기와 추억을 함께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년 동안 웨이터로 일하던 레스토랑을 나와 같은 메뉴의 식당을 차려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 이가 있다. 뉴욕 3대 레스토랑의 하나로 손꼽히는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의 창업자인 울프강 즈위너의 얘기다. 그는 뉴욕의 전설적인 스테이크 하우스로 손꼽히는 ‘피터 루거’에서 40년간 웨이터로 일했다. 은퇴 이후 피터 루거에서 함께 일하던 직원 둘과 2004년 자신의 이름을 딴 스테이크 하우스를 차렸다. 언젠가 자신만의 스테이크 하우스를 차리겠다는 막연한 꿈을 실현시킨 건 그의 아들 피터 즈위너(현 대표)의 부채질 때문이었다. 지난달 한국에선 처음이자 전세계 11번째로 문을 연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 청담’의 개소식에 참석한 부자(父子)를 만나봤다.

대표 메뉴인 포터 하우스 스테이크. 안심과 등심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울프강 스테이크하우스 제공]

 -스테이크 집을 차린다고 했을 때 피터 루거 측과의 갈등은 없었나.

 (울프강)“피터 루거 측에서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하지만 피터 루거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 내자는 아들과 지인들의 권유가 있었다. 60년을 서비스업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서비스를 하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아들을 가리키며) 젊고 진취적인 사업가와 합쳐지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피터는 시카고대 MBA 출신으로 뉴욕 시티 그룹 부회장을 지냈다. 왜 잘나가는 금융인의 길을 접고 스테이크 사업에 뛰어 들었나.

 (피터)“ 아버지의 오랜 꿈을 이뤄드리고 싶었다. 제가 받아온 다양한 교육과 아버지의 경륜이 합쳐지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특히 2004년 당시 뉴욕은 전세계 미각이 모여드는 각축장이었기 때문에 글로벌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했다.”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레스토랑 경영 방식에 차이점이 있다면.

 (울프강)“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야망이 있고 열정적이다. 전 세대로부터 배운 것을 기반으로 그 위에서 시작하니까 발전의 속도가 빠를 수 밖에.”

 (피터)“(웃으며)그렇다.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피터 루거를 뛰어넘고, 나는 아버지를 뛰어 넘으면 됐으니까. 일단 아버지 세대는 하나의 레스토랑을 최고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우리 세대는 이것을 어떻게 브랜드화해서 전세계로 뻗어나갈지, 그리고 전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맛의 동질성을 어떻게 보장하나.

 (피터)“전세계 11개 매장 모두 동일하게 22~24개월 된 미국 블랙 앵거스의 프라임 등급(상위 3%)의 소를 사용하고, 이를 28일간 드라이에이징하며, 1700℃의 특수 오븐에 굽는다. 재고 처리와 조리의 까다로움, 비용 면에서 부담이 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매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고기를 드라이에이징 하는 레스토랑은 극히 드물다.(※드라이에이징은 고기를 공기 중에 노출한 상태로 숙성시키는 방법으로, 숙성 후 고기의 풍미가 향상되고 육질이 부드러워진다. )”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스테이크는 무엇이었느냐’고. 울프강이 위트있게 답했다. “그거야 배고플 때 먹는 스테이크지!”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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