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전업주부 1년 … 남편한테 괜히 눈치가 보여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01 삶의 기준을 밖에서 찾지 마세요

Q(남편이 한심하게 볼까 고민인 여성) 결혼 후 잠시 일하다 전업주부로 지낸 지 1년 됐습니다. 그동안 임신과 유산을 겪으면서 몸이 힘들었던 저는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만족스럽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과 대화하던 중 제가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를 남편이 원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땅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얼마 후 이사 계획이 있어서 지금 일을 다시 시작하기도 애매합니다. 남편에게도 이런 얘기를 했고, 남편도 알겠다며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입니다. 그 후로 자꾸 남편의 말을 의식하는 것 같아요.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뭔가 해야 하는데 싶고, 뭔가 할 때는 남편이 한심하게 생각하는 일은 아닐지 신경 쓰이고, 뭘 하든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남편은 정말 아무런 눈치를 주지 않는데도 말이죠. 따뜻한 햇살만 봐도 행복하던 저였는데, 이제는 행복은커녕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드는 저를 보면 화가 납니다. 왜 이런 걸까요.

A(주부 9단 존경하는 윤 교수)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분도 강의를 들으려고 강의실만 들어가면 잠이 쏟아진다고 합니다. 우리 뇌가 논리적으로만 작동한다면 이런 일이 없을 텐데 말이죠. 잘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가 우리 뇌 안에 있어 내 감정과 행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사연도 그렇죠. 자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돼 더 괴롭습니다.

 따뜻한 햇살만 봐도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은 최고의 마음 상태입니다. 뇌가 세상의 에너지를 잘 당겨서 내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남편이 툭 던진 말 한마디가, 나쁜 뜻도 아니었는데,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주관적 가치에 행복을 느끼던 뇌에 갑자기 타인의 시선, 비교라는 기준이 강하게 다가 온 것이죠. 내가 이렇게 평화롭게만 살아도 되는 것이냐는 불안과 자괴감이 찾아 온 것입니다. 말 한마디에 이렇게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게 우리 마음입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책에서 사회학자 리스먼은 동료나 이웃 등 또래 집단의 눈치를 살피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을 외부지향형 인간형이라 했습니다. 고도 산업사회에서 탄생한 외부지향형 인간형은 타인들의 생각과 관심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 집단에서 격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겉으로는 사교적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고립감과 불안감으로 언제나 번민합니다.

 따뜻한 햇살만 봐도 행복한 마음이란 건 행복의 기준이 주관적이고 내면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남편의 말 한마디가 행복의 기준을 외부지향적 알고리즘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의존하여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만든 것입니다.

 주관적인 가치에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두 다리에 힘을 딱 주고 세상이 내 주위를 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외부 가치에 내 행복감이 좌우된다는 건 내가 인공위성처럼 다른 사람을 빙빙 돌게 되는 겁니다. 눈치를 볼수록 더 빙빙 돌게 되어 삶이 어지럽고 피곤해집니다.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노력에 지치고 한계를 느껴 사람이 싫어질 때 느끼는 고립감이 군중 속의 고독인 것입니다.

 어떤 요인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가를 연구하는 행복과학 연구 결과를 보면 첫 번째가 마음을 터놓을 가까운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가이고, 두 번째가 행복의 기준이 내 안에 있는가 아니면 외부의 평가에 따르는가 입니다. 두 요인은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따뜻한 봄 햇살만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내 안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쌓이게 되고, 긍정적인 에너지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며, 그래서 친밀한 휴먼 네트워크도 더 단단해지게 되니까요. 반대로 외부의 기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에너지가 고갈되기 쉽고 사람에 지쳐 결국은 고독한 삶에 이르게 됩니다.

02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행복

Q말 한마디에도 마음에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나 보죠. 어떻게 하면 다시 예전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떤 책에서 긍정적인 사고도 연습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매일 거울을 보며 ‘넌 멋지다, 넌 눈치 볼 필요 없이 당당하게 살면 돼’라고 말해 보지만 잠시 기분이 좋아졋다가 다시 푹 꺼져 버립니다.

A긍정심리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사람이 결혼도 잘하고 승진도 잘되고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긍정적인 마음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뇌의 에너지를 태워 긍정적인 마음을 일시적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억지로 만든 긍정성은 오래 가지도 않고 반복해서 인공적으로 만들다 보면 뇌가 더 지쳐버리게 됩니다. 뇌에 따뜻한 에너지가 꽉 차 있을 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입니다. 봄을 만끽할 때 행복했던 것처럼요. 억지로 긍정성을 만들다 지쳐버리게 되면 오히려 부정적인 생각이 스며들게 됩니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음악이 좋아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추구하던 무명가수 A. 알아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음악을 즐기고 삶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대박이 터졌습니다. 한 인기 밴드가 A의 앨범을 듣고 맘에 들어 준비하던 앨범에 객원가수로 참여해 달라고 했는데 그 노래가 뜬 거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 보기 시작했고 방송에도 나가고 큰 콘서트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청중들의 뜨거운 환호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더 이상 무명가수가 아닌 A, 자신의 두 번째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서 여러 좋은 아이디어와 악상들이 활발히 떠올랐습니다. 열심히 작곡하며 스튜디오에서 앨범 녹음 작업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전 같으면 3개월이면 끝날 작업이 9개월이 지나도 진전이 없었습니다. 스튜디오에 귀신이 있나 하는 생각에 스튜디오도 옮겨 봤습니다. 그런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초조함과 자괴감에 우울증까지 가져왔습니다.

 하도 답답해 평소 알고 지내던 제게 전화를 해왔더군요. “우울증인지 치매인지 도무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요. 저 왜 그런 것인가요.” 제가 되물었습니다. “요즘 삶의 목표가 뭐죠, 음악을 하는 이유가 뭐죠.” 사람은 성공을 맛보거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 집중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목표가 주관적인 가치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그만큼 타인이 주는 환호가 강력한 쾌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가수라면 청중일 것이고 오늘 사연처럼 아내라면 남편이 되겠죠. 그런데 목표가 타인의 시선으로 지나치게 옮겨가면 행복을 느끼기 어려워집니다. 타인의 시선은 내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봐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죠.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내 삶의 목표가 무언지를 가끔씩 점검해야 합니다. 가수 A도 자신이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해 봤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내 음악을 들어주는 이가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최선을 다해 노래하겠노라 생각했던 옛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초심을 다시 삶의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앨범 작업을 즐겁고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