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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과거사 부정하려는 아베 … 그 역사적 뿌리를 찾아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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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894년 아산과 성환에서 벌어진 청·일 양국 육군의 충돌을 그린 그림 . 아래쪽 세 장은 ‘대동아전쟁기념보국엽서’ 그림으로 홍콩 함락 , 싱가포르 함락 , 진주만 공습 장면 이다. [사진 메디치]

제국 일본의 사상
김항 지음, 창비
343쪽, 2만2000원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김시덕 지음
메디치미디어, 384쪽
1만6000원

한일 교류 2천년,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정구종 지음, 나남
665쪽, 3만2000원

고민은 발을 딛고 선 이곳의 현실에서 시작된다. 광복 7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역대 정권이 표했던 과거사 반성의 뜻을 주워담으려는 움직임으로 주변국의 공분을 사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이익까지 복잡하게 맞물리는 동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한국은 고뇌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다. 왜 동아시아 국제 관계는 이같은 상황에 처했으며, 한국에 유리한 항로를 우리는 어떻게 개척해 나가야 하는가. 일본에서 공부한 두 젊은 학자가 나란히 펴낸 책 『제국 일본의 사상』과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과거를 들여다보는 지적 여정이다.

 김항(42)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교수가 쓴 『제국일본의 사상』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제국 일본은 과연 청산되었는가’다. 표면적으로 제국 일본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사라졌다. 새롭게 세워진 국민국가 일본은 파시즘·침략전쟁·식민지배로 상징되는 제국 일본을 적극적으로 지워나가려는 사상적·정치적 노력을 기울인다. 해방 후의 한국 역시 ‘반만년 이어온 단일민족’ 서사 등을 내세우며 상처투성이였던 식민지의 기억을 불식하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제국 일본의 복잡다단한 지층을 눈에만 보이지 않도록 ‘공구리치는’ 것에 불과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지층의 구조와 역동성을 철저히 탐사하지 않은 채 콘크리트로 무작정 덮으려고만 한 까닭에, 일정한 자극이 주어지면 콘크리트판이 균열을 일으킨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그 여파로 중폭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상호적대도 그 균열 중 하나다.

 이 지층에 어떤 사상적 고민이 숨어 있었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로 이어지는가를 탐사한 것이 이 책이다. 키워드는 주권과 식민지, 아시아다. 일본사회에서 주권의 문제는 천황제와 부딪히며 계속 불협화음을 냈다. 1889년 만들어진 메이지헌법의 주창자들은 제1조에서 ‘대일본 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주권’ 개념이 ‘국민’과 결부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패전 후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명시했지만, 그 안에서 천황의 자리를 어디에 놓을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된다. 책에는 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 등의 사유에서 제국이라는 멍에를 등에 진 채 이후를 모색하려 했던 지식인들의 노력을 읽어낸다.

 저자에 따르면, 식민지였던 조선의 지식인들 역시 숙명적으로 희미할 수밖에 없는 민족이나 주권 개념과 싸웠다. “조선인은 식민지배 내내 하나의 민족으로 상상됐지만, ‘국민’으로 규정되지는 못한 애매모호한 지대에 자리한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염상섭의 『만세전』 등의 내용을 분석하며 식민지 조선에 스며든 제국의 문제를 살핀다.

 김시덕(40) 서울대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조금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는 언제부터 지정학적 요충지였나’라는 질문으로 책은 시작된다. 저자는 해양세력이었던 일본이 대륙진출을 꿈꾸며 처음으로 한반도 정복을 기도한 임진왜란에 주목한다. 임진왜란으로 중국 은 해양의 일본 세력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한반도를 다시 보게 된다. 결국 임진왜란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 대륙과 해양 세력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대두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시작으로 이후 500여 년에 걸친 동아시아 역사를 ‘해양세력’ 중심으로 재정리했다.

  과거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니 현재의 모습 또한 다르게 읽힌다. 『동아시아…』의 저자는 현재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에 대해 ‘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재 는 120년 전과 다르다고 말한다. 일본의 군사적·정치적 변화는 일본 정치세력의 우경화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지도하에서 진행된다는 얘기다. 이제 한국은 중국 굴기, 일본 우경화 등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를 단선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복잡한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제국 일본의 사상』 역시 사유의 폭을 넓히라 제안한다. 제국 일본의 흔적이 아직도 요동치는 아시아에서 국민국가의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현실이해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동아시아를 운명처럼 하나의 상황에 내던져진 ‘공존’의 장으로 인식하며 평화의 미래를 전망할 필요성도 덧붙였다. 둘 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저자들의 지적 사유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S BOX] 도공 심당길과 그 후예들

일본 도예의 역사에는 한반도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있다. 임진왜란 당시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들이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가고시마(鹿兒島) 지방에서 만드는 도자기 사쓰마야끼(薩摩窯)의 종가인 심수관가(沈壽官家)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전라북도 남원에서 사쓰마로 끌려간 초대 심당길(沈當吉)의 후손들이 운영하고 있다. 조선 도공들은 서민들이 주로 쓰는 그릇 을 만들며 생계를 도모했는데, 그 예술성이 높이 평가받으면서 일본 전체에 알려지게 된다. 심수관가를 이끌고 있는 15대손은 『한일 교류 2천년,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에 실린 인터뷰에서 “조선의 도예기술이 일본에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조선의 기술과 사람들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이해해준 친구들이 있어 가능했다”며 ‘한국과 일본의 콜라보레이션 정신’을 이야기한다.

 일본 백자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는 규슈(九州) 아리타야키(有田?) 역시 조선도공 이삼평(李參平)에 뿌리를 두고 있다. 400년동안 이어져 온 아리타야키는 현재 14대 이삼평이 이끌고 있다. 그는 “조선인이 아리타에 온 덕분에 우리들이 태어날 수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한·일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한·일협정 50주년을 맞아 언론인 출신의 저자가 출간한 이 책에는 그 외에도 꾸준히 양국간의 교류를 이끌고 있는 일본의 문화계·학계 인사 23명과의 인터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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