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불화에 4살 딸 남겨놓고 자살하려던 엄마 구출한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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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출동을 앞둔 서울 노원경찰서 노원지구대 서승경 경사(오른쪽)와 김휘두 경위.
사진=정혁준 기자

우울증과 가정불화를 비관해 4살짜리 딸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20대 여성을 17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이 수십여분간 설득한 끝에 구조했다.

서울 노원경찰서 노원지구대 서승경(47) 경사는 지난달 31일 오후 12시 40분쯤 112지령실로부터 출동명령을 받았다. 한 여성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119에 전화를 걸어 “투신자살을 하겠다”는 외마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내용이었다. 119에서는 자살의심 사건으로 판단, 이 여성이 걸어온 휴대전화 번호를 추적해 발신지가 서울 상계5동 근처라는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한 뒤 경찰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서 경사와 김휘두(46) 경위 등 9명의 경찰관이 즉시 출동했지만 신고자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기지국을 이용한 위성항법장치(GPS) 위치추적은 오차범위가 반경 500m이상에 달하기 때문이다. 당초 서 경사는 119에서 알려준 장소에 있는 4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주위에는 빌라ㆍ아파트 등 비슷하게 생긴 고층 건물이 많아 수색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서 경사가 신고자와 통화를 시도하길 수십여 차례. 21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A(28)씨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98년 순경 공채로 입사해 17년차인 서 경사는 이때부터 베테랑의 면모를 보였다. A씨는 처음엔 “가족도 나를 찾지 않는데 당신들이 왜 나를 찾느냐”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고 한다. 서 경사는 “마음을 진정시키시고 만나보고 싶다”며 A씨를 안심시키고 전화통화를 이어갔다. 그는 “전화가 끊기면 신고자가 당장 이라도 목숨을 끊을 것 같이 불안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서 경사는 또 “비를 맞고 있느냐” “주위에 큰 건물이 뭐가 보이느냐”는 질문을 해가며 A씨가 있는 곳의 정확한 위치도 알아냈다. 그렇게 찾아낸 A씨는 5층규모의 빌라 옥상난간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었다. A씨는 이미 몸의 3분의 2쯤이 이미 난간 밖으로 넘어간 상태여서 자칫하면 미끄러져 아스팔트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서 경사는 끝까지 통화를 유지하며 옥상으로 가 A씨를 설득, 그를 난간 아래로 끌어내렸다.

서 경사가 다가가자 A씨는 오열했다고 한다. A씨는 자살을 시도하려 한 이유에 대해 “가정불화 때문에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A씨는 결혼을 일찍해 이미 4살짜리 딸도 있는 상태였다. A씨는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서 경사는 “A씨가 비교적 일찍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한다”며 “어린나이에 집에서 아이만 돌보면서 우울증 증세까지 겹쳐 자살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처음 현장에 도착한 순간 빨리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면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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