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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사이버 세상의 '욕설 비즈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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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거짓말과 욕설, 어느 게 더 나쁜가?’ 요 며칠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하나같이 ‘거짓말’이라고 대답했다. 혹자는 “욕설은 욕먹을 짓을 한 사람에 대한 훈계”라며 옹호론도 폈다. 우리 사회가 거짓말보다 욕설에 관대한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최근 홍가혜씨가 사이버상에서 자신에게 욕설을 한 네티즌 1000여 명을 고소한 일에 많은 사람이 반감을 느끼는 데엔 이런 이유도 있어 보인다. 홍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한 TV매체와 거짓말 인터뷰를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그녀가 거짓말을 했으니 욕먹어 마땅하다고 생각해 어쩌면 정의감을 표현하는 차원에서 사이버상에 욕설을 퍼부었는지도 모른다.

 한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1000여 명이 한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는 건 끔찍한 집단린치다.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고 타인들이 그녀를 욕할 권리를 갖는 건 아니다. 거짓말은 인간의 지성(知性)으로 걸러낼 수 있지만 욕설은 타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야만행위다. 욕설은 거짓말보다 나쁘다.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법으로도 홍가혜의 거짓말은 무죄였지만 그녀에 대한 ‘미친X’라는 욕설 한마디는 처벌의 대상이다.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는 사이버 세상이 나쁜 것이고, 그 안에서 서로 엉켜 배설하는 행위가 불법적인 것이다.

 이런 야만적 사이버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노력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므로 홍씨의 문제제기는 정당한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합의금’ 대목에 이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무더기로 고소한 뒤 피고소인들에게서 수백만원을 받고 미리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해주는 건 오해받기 십상이다. 대검이 ‘이 고소 사건에 대해 단순 욕설은 각하하는 등 새로운 기준을 마련 중’이라며 즉각 나선 것도 혹시 모를 ‘낌새’ 때문이다.

 대검 관계자는 “요즘 사이버 세상은 ‘남고소(濫告訴·고소 남발)’의 거대한 원천”이라고 했다. 시기별로 유행도 있다고 했다. 한동안 저작권법 위반이 주류였단다. 무협지·포르노 등을 걸어놓고 다운받은 네티즌들을 많게는 1만여 명씩 무더기로 고소했다. 이런 사건에선 피고소인 대부분이 미성년자여서 검찰이 일선 경찰에 미성년자는 일괄 각하하라고 지침을 보냈더니 좀 뜸해졌단다. 그러다 요즘 새로 뜨는 분야가 ‘댓글 소송’이다. 욕설 댓글을 고소하는 것이다. 욕설은 무조건 죄다. 그렇다 보니 개중엔 일부러 욕설을 유도한 듯 보이는 고소인들도 있단다.

 이런 소송의 특징은 기소보다 합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경찰이 IP주소를 추적해 피고소인들을 찾으면 고소인 법률대리인이 나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합의금을 받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게 수순이란다.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일명 ‘기획 변호사’들도 있단다. 사이버의 욕설 문화가 이젠 그걸로 돈벌이를 하는 ‘욕설 비즈니스’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한데 검찰도 변호사협회도 이들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대검 관계자는 “피고소인들은 현행법을 어겼고, 우리나라는 형사사건도 금전적으로 합의하는 것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 법 테두리 안에서 하는 행동이라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다만 앞으로 금전적 형사합의를 제한하고, 신종 사이버 비즈니스를 규제하는 입법과 기획변호사들을 견제할 변호사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변호사 윤리 심의는 피해자들이 진정해야 개시되는데 그런 진정이 없었다”며 “피고소인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심의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일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홍가혜씨의 욕설 고소는 사이버 욕설을 경계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면 밝은 면이 보인다. 검찰이 이를 계기로 단순 욕설에 대해선 돈으로 합의하는 대신 교육 조건부 기각을 하는 등으로 사이버 욕설도 잡고, 욕설 비즈니스도 잡는 묘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