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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선 신사업 전략, 안에선 집단 혁신 토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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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이재용(47?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출장을 마치고 29일 입국하며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지난 24일 출국한 그는 중국 시틱그룹과 금융사업 협력을 확대키로 했으며, 보아오 포럼에서는 헬스케어·관광산업의 혁신에 대해 강조했다. 포럼과 관련한 내용을 묻는 질문에 그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뉴시스]

이재용(47) 삼성전자 부회장이 본업인 전자사업 외의 다른 분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새 비즈니스 모델 찾기에 적극 나선 가운데 그룹내에선 임직원과의 소통을 대폭 강화하며 실질적인 그룹 리더로서의 위상 강화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29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이날 중국 하이난에서 폐막한 ‘보아오포럼’(BFA)에서 삼성의 미래 사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의 새 경제성장 동력으로 의료·관광·문화산업을 꼽으며 “삼성은 정보기술(IT)·의학·바이오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BFA에 참석한 세계 저명 인사들 앞에서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는 우선 스마트헬스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부회장은 “인구 고령화는 한국에 닥친 가장 큰 위기이며, 이를 해결할 방안 중 하나가 헬스케어”라며 “혁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처음으로 BFA 공식 파트너사로 참여한 삼성은 행사장에 별도의 부스를 마련해 삼성의 헬스케어 기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관광산업도 그가 새로 주목하고 있는 분야다. 그는 “관광·문화 산업은 국가 간 친선 관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한류의 확산이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고 한중 양국 간 이해를 증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에버랜드와 중국에서 호텔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호텔신라를 중심으로 레저·관광분야를 챙기겠다는 대목으로 읽힌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이 한국과의 우호의 상징으로 삼성에버랜드에 제공하기로 한 자이언트판다를 위해 최신식 설비를 마련할 것”이라며 “IT의 혁신은 문화를 체험하는 새로운 방식, 완전히 새로운 표현법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이 부회장은 베이징에서 중국 최대 국영기업 시틱그룹 창전밍(常振明) 대표를 만나 금융 사업 협력을 확대키로 했다.<3월27일 B6면> 그가 그간 마스터카드의 아자이 방가 대표, 페이팔의 피터 틸 창업자 등을 만나온 점을 감안하면, 금융·기술이 결합하는 핀테크를 중심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사실 신성장산업은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고민거리 중 하나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계열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독립적으로 자생하면서 사업 확장을 하기에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그룹 차원에서 전기차 배터리·바이오제약·의료기기·태양광·LED(발광다이오드)를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했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미친다.

 삼성그룹 핵심 관계자는 “사업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에 5년 전 짰던 계획을 그대로 고집할 수는 없다”며 “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BFA에서 이 부회장의 행보가 외부에 비친 삼성의 변화라면, 사내 집단지성 시스템 ‘모자이크(MOSAIC)’는 내부의 변화를 상징한다. 지난해 3월 임직원들의 아이디어 제안을 위해 만든 시스템으로 하루 평균 5만명 이상의 임직원이 접속하고 있다. 직무·직급에 상관없이 제품이나 경영 관련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던진 뒤 집단 토론을 거쳐 발전시켜나간다. 지난 1년간 15만건의 제안이 이뤄졌다. 모자이크를 통해 50여 건의 특허가 나왔으며, 뇌파를 분석해 뇌졸중·우울증·뇌전증 등을 진단·예측할 수 있는 ‘뇌졸증 예고모자’ 등 90여 건은 사업화 검토에 들어갔다.

 특히 조직문화나 인사제도에 관한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개진되고 있다. 최근 설문조사에서 임직원들은 전담조직 신설(30.6%), 성과 및 보상제도 보완(30.1%), 인수·합병(M&A) 활성화(20.9%) 등이 시급하다고 꼽기도 했다. 관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삼성의 조직문화를 감안하면 내부 조직과 시스템에 대한 의견 제시는 이례적이다. 이른바 ‘관리의 삼성’에서 구성원간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창조적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소통의 삼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이런 이 회장의 행보가 PI(President Identity, 최고경영자 이미지) 전략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한 그룹 지주사 관계자는 “생각보다 경영권 승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지금부터 삼성 그룹 차원에서 이재용 이미지 메이킹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손해용·김현예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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