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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 연설 확정되자 아베 "위안부, 인신매매 희생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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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했다. 이어 “측량할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다음달 29일(현지시간)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에서 합동연설이 확정된 아베 총리는 27일자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아베의 한 측근을 인용 , “아베 총리가 위안부 와 관련해 ‘인신매매’라는 표현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WP는 보도했다.

 그러나 일견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전향된 입장인 것처럼 보이는 ‘인신매매’라는 표현에는 아베 총리의 꼼수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0세기 최악의 인권유린이자 국제사회가 ‘성노예’(Sex Slavery)’ 사건으로 규정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내 한인 풀뿌리운동단체인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 이사는 “인신매매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개념인 데다 (아베 총리의 발언에는) 매매의 주체와 객체, 목적이 무엇인지가 나와 있지 않다”며 “일본군 위안부 사건은 일제의 조직적 후원 아래 자행된 ‘성노예’ 사건이라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발언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 같은 표현은 사안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미국 내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호도시키려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7년 미국 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한 위안부 결의안에도 위안부 문제를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의 하나로 규정”했지만, 아베 총리의 두루뭉술한 언급과는 달리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결의안에는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 군대가 강제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의 노예로 만든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한 태도로 공식 인정 및 사과하고, 역사적 책임을 질 것”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베 총리의 과거 ‘물타기’ 발언과는 별개로 미국 의회와 정부는 아베 총리 상·하원 합동연설을 적극 반기는 분위기다.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의장은 26일 보도자료에서 “아베 총리는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는 첫 일본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이 같은 역사적 이벤트를 주최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나는) 열렬한 아베 지지자”라고 말했다.

 미국이 자존심 대신 ‘친구 일본’을 내세우며 합동연설의 빗장을 푼 이유는 아베 내각이 총동원 외교로 미국의 충실한 대변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베이너 의장은 이날 아베 총리의 연설과 관련,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 성장이 포함된다”고 밝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박 대통령, 아베 조우하나=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국장에서 아베 총리와 만날 가능성이 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장례식장에서 여타국 정상들과 자연스럽게 조우 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는 장례식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아니라 리위안차오(李源潮) 부주석이 참석한다고 밝혔다.

신용호 기자,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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