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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장 자살 비행" … 기장 나가자 조종실 잠그고 전속력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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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블랙박스가 열렸다. 경악할 만한 진실이 드러났다.

 24일 150명을 태우고 순항하던 독일의 저먼윙스 9525편이 추락한 건 부기장 때문이었다. 기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종실 문을 걸어 잠그고 비행기를 3만8000피트의 고도에서 6000피트로 급강하시킨 뒤 전속력에 가까운 시속 430마일(시속 692㎞)로 산악지대에 충돌시켰다. 그 마지막 10분간 그는 침묵했다. 호흡이 가빠지지도 느려지지도 않았다. 막판에 승객들의 비명이 기내를 채웠는데도 그랬다. 이제 의문은 독일인으로 알려진 그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가에 모아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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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마르세유 검찰 당국은 26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사고 당일 손상된 상태로 발견된 블랙박스의 조종실 음성녹음장치(CVR)로부터 추출한 오디오 파일을 분석한 결과다.

 오디오는 추락 직전 30분 간의 조종실 음향이었다. 초반 20분간의 대화는 화기애애했다. 기장 패트릭 존더하이머는 “착륙을 준비해야 한다”며 이런저런 지시를 했다. 그리곤 ‘생리 현상(natural call)’ 때문에 조종실을 떠났고 부기장인 안드레아스 루비츠(28)가 대신 조종간을 잡았다. 루비츠는 곧 급강하 시스템을 작동했다. 그 사이 조종사가 돌아와 문을 두드렸으나 루비츠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좀더 세게 쳐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지막엔 거의 문을 부수려고 시도하는 듯했다. 기장은 애원도 하고 호소도 했다.

 관제탑에서도 이상 강하에 9525편과 수차 례 대화를 시도했다. 루비츠는 그러나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충돌 직전 10분간 조종실에선 침묵이 흘렀다. 루비츠는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웅얼거림도 없었다고 한다. CVR에는 대신 그의 숨소리가 녹음됐다. 브리스 로뱅 검사는 브리핑에서 “부조종사는 충돌 바로 그 순간까지 정상적으로 호흡하고 있었다”며 “마지막 10분은 완벽한 침묵이었다”고 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범이 여객기의 조종실을 장악하는 걸 막기 위해 조종실 문 개폐 시스템을 대폭 강화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 비행기의 경우 외부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그러나 안에서 걸어 잠글 경우 밖에선 사실상 문을 열 수 없게 돼 있다.

 루비츠는 왜 그랬을가. 로뱅 검사는 “현재 유력한 해석은 비행기를 추락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로뱅 검사는 ‘의도적’(deliberate), ‘자발적’(voluntarily)이란 단어를 썼다. 그러나 ‘자살’이라고 하진 않았다. 그는 “자살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의문을 갖는 게 적법하다”고 했다. 그는 “테러 공격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했다. 독일 수사 당국도 “우리가 아는 바로는 테러 행위와 연결할 만한 배경이 없다”고 했다.

 독일 몬타바우어 출신인 루비츠는 비행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10대 때부터 비행클럽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루프트한자 비행학교를 졸업한 2013년부터 저먼윙스에서 일했다. 630시간의 비행 경력이 있다. 루프트한자 측은 루비츠에 대해 “2008년부터 교육을 받았고 6년간 각종 검사를 다 통과했고 정신 병력도 없었다”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을 못했다. 우리로선 이 의문을 푸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우리로선 참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뱅 검사는 이날 오디오에 담긴 마지막 기내 모습도 전했다.

 “수 초간 비명이 들렸다. 죽음은 한순간이었다.” 탑승객들 대부분은 충돌 직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는 의미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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