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지진 참사] 호텔 투숙객들 공포 질려 투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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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내 평생 이렇게 끔찍한 일은 처음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24년 만에 최대 규모의 강진이 알제리를 할퀸 21일 밤. 수도 알제 북서부 36km 지점, 부메르데스주(州) 루이바시(市)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진을 맞은 야지드 켈파우이는 "지진으로 어머니를 잃었다"며 몸서리를 쳤다.

또 다른 주민 루이니스는 "갑자기 아파트가 시소처럼 마구 흔들려 쓰러질 뻔했다. 모든 가구가 넘어지고 샹들리에는 창 밖으로 퉁겨나갔다"고 지진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지시간 오후 7시45분 발생한 지진은 5분간 지속됐으며 그후 2시간 동안 2백차례나 여진이 이어졌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워싱턴의 지질연구소는 이번 지진이 1980년 4천5백명을 숨지게 한 리히터 규모 7.7의 지진 이래 최대 강진이라고 집계했다.

알제리 북부 지역은 지진 발생 직후 전기공급이 끊겨 암흑으로 변한 데다 2시간 동안 2백여차례나 여진이 이어지면서 아비규환이 됐다. 알제리 TV는 수십구의 시체가 담요로 가려진 채 실려가는 모습과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어린이들의 모습을 잇따라 보여줬다.

외신들도 "지축이 흔들리면서 겁에 질린 사람들이 호텔 창문에서 뛰어내렸다"고 보도했다. 집 밖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건물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거리에서 밤을 지샜다.

진앙지에 인접해 가장 피해가 컸던 부메르데스 지역은 건물 대부분이 붕괴해 완전 황폐화됐다. 의료진은"부상자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조차 없다"고 전했다.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급거 현장을 방문, 구조를 독려했다.

지진이 일어난 알제 북서부 지역에선 80년에 이어 94, 99, 2000년에 리히터 규모 5 이상의 강진이 잇따라 15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 지역은 지질학상 지각의 아프리카판과 유럽판이 맞닿는 경계이며, 아프리카판이 유럽판을 밀치면서 매년 6mm씩 북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어 강진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고 재해 전문 학술지 '내추럴 해저드'가 2001년 경고했었다.

한편 프랑스는 1백20명으로 구성된 구조대를 급파했으며 독일도 재해기술팀을 현지로 파견하는 등 각국의 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알제리는=알제리는 62년 프랑스에서 독립을 쟁취했으나 90년대 들어 군부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분쟁으로 오래 내전에 시달려왔다.

99년 4월 취임한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수천명의 이슬람 무장대원들을 석방하며 국민통합정책을 추진해 내전은 일단락됐지만 국지적 폭력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아랍인 70%, 베르베르족 30%로 구성된 알제리는 국토가 2백38만㎢(남한의 20배)에 달하는 대국이지만 80%는 사하라 사막이 차지하고 있다.

강찬호.서정민 기자

<사진 설명 전문>
22일 알제리 부메르데스주의 한 마을에서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조팀이 지진으로 완전히 붕괴된 78층짜리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있다. 지진 발생 당시 이 건물 안에 있던 3백50여명이 매몰됐다.[부메르데스(알제리) 로이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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