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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성범죄 피해 증거부터 확보해야 … 친족 성폭력은 법적 해결이 가장 효과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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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성폭력 가해자의 다수가 회사 관계자나 친인척 등 ‘아는 사람’으로 조사된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성범죄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친밀함의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벼운 접촉이나 성적 언행 등도 상대방에게는 일종의 성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윤휘영 경찰청 성폭력대책계장은 “상대방이 침묵을 한다고 해서 성적 행동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했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며 “가벼운 접촉이나 성적 언행으로도 상대방이 성적으로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성범죄 가해자 중 직장 내 지인이 20.7%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폭력은 고용주(19.1%), 직장 상사(41.6%) 등 조직 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범죄가 다수로 나타났다. 단순히 직장 내 동료와 상담을 하거나 회사 측에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론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사내에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판단되면 녹음이나 e메일, 목격자 등 증거를 남긴 후 회사에 가해자와의 분리부터 요청해야 한다”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청 산하 성폭력 상담소를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족 간에 발생하는 성범죄는 해결이 더욱 어렵다. 피해자가 주변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피해 사실을 숨기거나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친족과 친인척에 의한 성범죄 비율이 높게 집계되는 청소년(23.0%)의 경우 가정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성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덕경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친족 간의 성폭력은 다른 성폭력과 달리 가족과의 상담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성폭력 상담 창구를 이용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또 “어릴 때부터 성범죄가 가족, 친척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즉시 주변에 알리는 것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턱없이 부족한 아동보호기관도 문제다. 현재 전국 251개 시·군·구 중 시·도 단위 아동보호전문기관은 45개뿐이다. 이 때문에 거주 지역에 마땅한 보호기관이 없어 가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하고도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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