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같은 태자당이라도 … 홍이대 어깨 펴고 관이대 위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인생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다면 국가엔 흥망성쇠(興亡盛衰)가 따른다. 권력 또한 부침(浮沈)을 거듭한다. 시진핑(習近平) 등장 이후의 중국에서도 뜨고 지는 세력은 있게 마련이다. 홍이대(紅二代)의 주가가 오르고 있다면 관이대(官二代)는 눈총을 받는 신세다. 둘 다 고위 관료의 자제를 뜻하는 태자당(太子黨)이라 할 수 있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홍이대는 관이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진핑의 굳건한 지지 세력을 자처하며 최근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홍이대는 누구인가.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홍이대는 넓게 말하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주역인 홍색(紅色, 공산당) 가문의 후대로 2세와 3세 모두를 뭉뚱그려 가리키는 것이다. 좁게는 문혁 이전 국장(局長)급 이상 고위 간부의 자제들을 홍이대라 부른다. 현재 약 4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홍이대는 자신들의 선대가 공산당과 홍군(紅軍)의 고위 간부 출신으로 피와 땀을 바쳐 홍색 강산을 일궈냈다고 자부한다. 따라서 건국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훗날 신중국이 세워진 뒤 고위 관료로 승진한 이들의 자제인 관이대와는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손자 마오신위(毛新宇) 중국군사과학원 전략부 부부장이 홍이대라면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아들 원윈쑹(溫雲松) 중국웨이퉁(衛通)공사 동사장은 관이대에 해당하는 셈이다.

 홍이대는 관이대가 모르는 여러 추억을 공유한다. 우선 옌안(延安)의 물을 마시고 자랐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의 본거지였던 옌안에서 태어나 옌안보육원에서 자란 홍이대가 많기에 나온 말이다. 또 중공 영도인과 해방군 장성의 자녀들이 주로 다녔던 팔일학교(八一學校) 출신인가도 홍이대의 한 특징이다. 시진핑 주석이 바로 팔일학교를 다녔다. 어떻게 대학을 갔는지도 중요하다. 홍이대 상당수는 문혁의 혼란기를 맞아 제대로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대신 고위 관료의 자제이지만 노동자나 농민, 군인으로서 3년 이상 근무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례 입학에 따라 대학에 갔다. 시진핑의 칭화(淸華)대 입학도 이런 절차를 밟았다. 병이 나면 마오쩌둥이 현판을 써 준 베이징의원(北京醫院)에 가 치료를 받는 것도 홍이대만이 갖고 있는 기억이다.

 홍이대가 세인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건 시진핑이 집권하면서다. 2012년 11월 시진핑이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된 뒤 얼마 후 약 1000여 명의 홍이대가 베이징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마오쩌둥의 정치 비서를 역임한 후챠오무(胡喬木)의 딸 후무잉(胡木英) 옌안(延安)자녀친목회 회장이 일장 연설을 했다. 그는 “당과 사회주의가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했으나 이제 새로운 지도자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며 시진핑 예찬론을 펼쳤다. 이후 이들의 빈번한 활동이 언론을 탔다. 2013년 10월 15일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 탄생 100주년 기념 좌담회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됐을 때도 홍이대가 대거 참석했다.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 아들 후더핑(胡德平), 류사오치(劉少奇) 전 국가주석 아들 류위안(劉源), 덩샤오핑(鄧小平) 장남 덩푸팡(鄧朴方) 등이다.

 지난달 3일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 설)을 앞두고 새해 인사를 겸해 열린 단배식(團拜式)엔 개국원훈(開國元勳)문화촉진회, 신사군(新四軍)연구회 등 수십 개의 홍이대 단체에서 1000여 명이 몰렸다. 홍이대 모임을 이끄는 후무잉은 이 자리에서 “시진핑이 반부패 투쟁을 장사가 자신의 한 팔을 잘라내는(壯士斷腕) 심정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보고 선열이 미소 짓고 후손이 따라 올 것”이라며 또 한 번 시진핑 지지를 선언했다. 홍이대는 현재 자신들 그룹에서 총서기를 배출했다는 자부심에 차 있다. 자신들과 추억을 공유하고 또 생각을 같이 하는 이가 중국의 리더가 됐다는 것이다.

 홍이대는 비교적 선대로부터 교육을 잘 받았고 또 절제심도 강해 부패 행위에 연루되는 일이 적다고 한다. 학교에 입학해 배운 첫 마디가 ‘마오 주석 만세와 공산당 만세’로 이상주의와 혁명주의 색채가 매우 짙다. 또 혁명에 대한 열정은 오히려 아버지 세대보다 강해 국가 보기를 마치 자신의 집처럼 여긴다(視國如家)는 특징이 있다. 이 같은 홍이대의 강렬한 애국정신이 현재 시진핑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반부패 투쟁의 중요한 동력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홍이대는 수는 많지 않지만 정계와 군부, 재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정계의 경우 시진핑을 필두로 위치웨이(兪啓威) 전 톈진(天津)시장 아들인 위정성(兪正聲) 정협 주석, 반부패 투쟁 진두지휘하고 있는 왕치산(王岐山, 야오이린 전 부총리 사위) 등이 있다. 재계 또한 적지 않다. 이는 한 집안에서 고위 관료는 둘 이상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홍색 가문의 불문율과 관련이 있다. 이에 따라 자녀 중 한 명이 정계로 나가면 다른 자녀는 재계로 방향을 잡았다. 덩샤오핑 시대 덩과 쌍벽을 이루는 지도자였던 천윈(陳雲)의 아들 천위안(陳元) 전 국가개발은행 동사장, 왕전(王震) 전 국가 부주석의 차남인 왕쥔(王軍) 바오리(保利)그룹 회장 등이 재계의 홍이대다. 군부엔 아버지에 이어 장군이 된 홍이대도 많다. 총장비부 부장 장요우샤(張又俠) 상장(上將)과 공군 사령관인 마샤오톈(馬曉天) 상장, 류샤오치 아들 류웬 상장 등이 다 그런 예다. 이들은 시진핑이 빠른 시간 안에 군권을 장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현재 홍이대는 시진핑의 커다란 자산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보는 시선이 꼭 따스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혈통을 강조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다. 자신들의 선대가 일군 강산이라며 자신들의 권리를 내세우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다. 또 이들 중 일부가 특유의 홍색 관시(關係)를 이용해 정치 브로커로 활약하며 치부를 하지 않느냐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일탈 행위를 하는 자는 관이대이지 홍이대가 아니라는 게 후무잉의 주장이다. 홍이대가 지향하는 바는 품행이 고결하고 명망이 있는 사람인 청류(淸流)가 되는 것이다. 자연히 중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꿈꾼다. 홍이대가 청류가 될지 아니면 기득권 세력으로 머물 지는 순전히 홍이대 자신들의 행동에 달렸다. 이에 따라 중국의 미래 또한 달라질 전망이다.

유상철 기자 you.sangchu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