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장으로 변한 주상복합 분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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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운니동의 모델하우스 현장. 마포구 도화동에 들어서는 주상복합 마포 트라팰리스의 오피스텔 당첨자 계약 마지막 날이다. "몇층.몇호에 당첨되셨습니까. 로열층은 당장 1천5백만~2천만원의 '피'(웃돈)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델하우스 밖에서 부동산중개업자로 보이는 40대 남자가 50대 여성에게 분양권 전매를 권했다.

모델하우스 안은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두세명씩, 네댓명씩 모여 앉아 당첨된 동과 층.호수를 확인하며 지금 팔면 웃돈이 얼마나 붙을지 얘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부가 6월 중순부터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 아파트분양권에 대해서는 입주 때까지 전매를 금지키로 한 이후 분양권 거래가 자유로운 주상복합아파트.오피스텔에 단기 투기세력이 몰릴 것이란 우려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계약 첫날인 20일에는 웃돈이 많이 붙지 않을 것이란 말이 돌면서 계약률이 20% 정도로 저조했는데 오늘 웃돈이 2천만원까지 붙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갑자기 바뀌었다. 오피스텔 치고는 이례적으로 1백% 계약됐다"고 분양사무소 관계자는 귀띔했다.

계약과 동시에 분양권을 전매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건물 뒤편에는 부동산중개업소 네곳에서 아예 탁자와 의자를 갖다놓고 매매계약서 등을 작성해주고 있었다. 관련 서류를 떼기 위해 퀵서비스들도 동원됐다. 한 50대 여성은 "웃돈을 5백만원 받기로 했다"며 서류 작성을 재촉했다.

분양업체는 1인당 한가구만 신청하도록 했지만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린 무더기 청약이 적지 않았다.

"청약신청서를 30장 낸 사람도 있어요. 친척을 모두 동원했는지 이름이 비슷하고 80대 할아버지까지 들어 있더라고요." 분양사무소 관계자의 말이다.

건물이 어디에 들어서는지, 또 아파트인지 오피스텔인지도 모른 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다는 것만 믿고 신청한 '묻지마'청약도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현장에서 만난 金모(60)씨는 "금리가 계속 떨어지자 은행에 넣어둔 퇴직금을 찾아 청약했다"고 말했다. 21일 청약을 받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상복합 월드메르디앙 94가구에도 청약자들이 대거 몰렸다. 청약 접수가 시작된 오전 10시에 이미 5백m 이상의 줄이 생겼다. 떴다방들은 단속을 피해 모델하우스에서 3백m 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당첨되면 웃돈을 붙여 팔아주겠다"며 신청자와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5백만~1천만원의 청약금으로 당첨만 되면 웃돈을 받고 빠지는 투기세력 때문에 정작 당첨되지 못한 실수요자는 웃돈을 주고 매입할 수밖에 없어 부동산시장에 한탕주의가 만연하는 것이다. 마포 트라팰리스 계약현장에서 만난 회사원 朴모(40)씨는 "낮은 금리로 시중에 돈이 넘쳐나게 해놓은 상황에서 전매가 자유로워 당첨만 되면 몇천만원을 벌 가능성이 있는데 누가 주상복합에 관심을 갖지 않겠느냐"며 정부를 꼬집었다.

안장원 기자

<사진설명>
분양권 전매가 자유로운 주상복합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21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월드메르디앙 주상복합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에 수요자들이 청약신청을 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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