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와 명분 면밀한 저울질 필요|국제 저작권 인정 검토 따른 대책과 외국의 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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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의 국제저작권 인정방침은 분명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에 틀림없다. 출판·음반·영화업계등으로 이어진 높은 파고는 자못 심각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체면치레의 의전적 국제협약 비준으로 끝날수 없다는데 있다. 국제저작권협약 비준은 외국서적등의 번역·복사에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인세와 국내 문화발전의 위축으로 적지않은 타격을 줄것이 틀림없다 국제저작권 문제의 경과와 대책, 그리고 외국의 예를 알아본다.

<경과>
당국과 문화계는 70년대말부터 국제저작권협약 가입문제를 거론해왔지만 늘「먼 장래의 일」로만 치부한채 본격적인 현실감각의 대책수립을 서두르지는 않았다.
선진 문화제국주의라는 비판도 있으나 국제저작권 인정은 시간을 앞당겨 하나의 「지적상품」으로 한국시장에서 당당한 값을 받겠다고 나섰다.
물론 세계저작권협약과 베른협약이 1971년 개정한 파리규정은 「개발도상국특혜조항」을두어 한국과 같은 발전도상국에 시혜(?)를 주고있긴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국제저작권기구 가입에 따른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문제가 다소 절박하게 제기된것은 지난해말 한미경제협의회 의제가 상호 교환되면서 부터였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지적 소유권」을 인정해야한다는 명분론은 마땅히 존중돼야한다.
이제는 다만 현실타개의 현명한 대책수립이 있어야한다.

<대책>
가입이전에 국내에서 이루어야할 일이 많다. 먼저 필요한것이 국내입법방안이다.
오늘날 국제저작권 문제를 두고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지켜나가고 있다.
국제저작권협약에 가입하더라도 그에따른 국내입법을 꼭 국제기준에 맞게 해야한다는 규정은 없다. 각 나라의 실정에 맞도록 만들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아서는 국제적인 수준에 따라야 할것이나 그 이전의 준비기간에는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것도 무방하다.
라틴 아메리카 여러나라등 문화수입국인 저개발·개발도상국들은 국제수준에 따른 번역권취득료인 정가의 5∼7%, 복제의 5%와는 달리 국내사정에 맞게 인하된 기준을 정하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충분한 준비를 거쳐서 해결할 문제다.
그 예비기간에 많은 번역을 해내야한다. 이를 위해 정부·학자·민간출판사등이 함께 모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학문이나 정보중 번역이 시급한것이 무엇인가를 정하고 이를 위한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국내 입법으로 외면상 우리가 무단복재를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혀둘 필요도 있다.
저작권협약에 가입할것을 생각하여 저작권 중재위원회같은 기구의 설립도 필요하다. 어떠한 책이 번역될만한 것이며 어떠한 책은 번역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학자나 연구기관을 주체로한 기구에서 결정하는 것이다.
우수하고 꼭 필요한 외서가 어떤 것인지를 정하는 일과 또 번역 출판을 맡을 출판사를 조정하는 등의 문제를 다루기 위한 기구가 필요해진다.

<외국의예>
저작권에 관한 국제협약도 다른 조약 가입 못지 않게 실리와 명분의 적용이 예리하게 작용한다.
미국은 베른협약을 발기, 협약을 성립시킨 회의에까지 참가했으나 오늘날까지 초안을 안했다.
당시 유럽문화의 수입국이었던 미국으로선 유럽저작물을 거저 사용하는 쪽이 이롭다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나아가 베른협약의 발행지주의를 영리하게 활용, 미국인의 저작물을 베른협약 가맹국인 영국이나 캐나다에서 먼저 (또는동시)발행케 함으로써 미국 저작물의 국제적 보호를 꾀했다. 미국의 이러한 「무임승차」 는 세계저작권협회에 가입할 때까지 거의 70년간 계속했다.
또 1973년 처음으로 세계저작권협회에 가입한 소련이 그때까지 「무조약국」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다른 나라의 저작물을 보호할 의무를 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소련의 가입은「파스테르나크」 나 「솔제니친」의 작품같은 반체제·지하 출판물을 막으려는데 목적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고. 농산물 거래에 따른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설도 있다.
일본은 베른협약이 성립된지 13년후인 1899년에야 가입했는데 이는 명치시대의 외국문화수입의 의욕을 다치지 않으려는데 있었다. 일본은 저작물이 나온지 10년만 지나면 저작권자의 승낙없이도 번역할수있다는 규정을 최근까지도 유보조항으로 계속 고집, 제나라이익을 좇기에 안간힘을 썼다.
쿠바와 필리핀같이 아예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나라도 있다. 쿠바는 1957년 세계저작권조약에 가입했으나 7년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고 난뒤『우리는 외국의 저작권을 일체 무시할테니 외국 또한 우리의 저작권을 무시하는 것은 자유』 라며 파기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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