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직원들, 사장인 나에게 무슨 말이든 다 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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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호 06면

무라타 사장은 “큰형이 44세에 사장이 되고 16년간 재직하는 동안 내가 사장이 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블룸버그]
무라타 보이(boy)

-세계 콘덴서 시장을 제패하게 된 비결은 뭔가.
“세라믹 콘덴서 사업만 70년째다. 오랜 세월 이 분야의 일만 하다 보니 핵심 기술과 능력을 갖게 됐다. 재료·프로세싱·디자인 등 적층세라믹콘덴서와 관련된 모든 업무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게 됐다.”

[중앙SUNDAY 창간 8주년 기획] 무라타제작소를 최고로 이끈 현장경영

-역사가 길다고 무조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아닐 텐데.
“굳이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연구개발(R&D)을 들 수 있다. 우리는 매출의 6~7%를 R&D에 쓴다. 다른 회사에 비해 많은 액수라고 생각한다. 긴 역사가 물론 기본이다. 새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는 시간도 필요하다. 또 요즘엔 소비자의 새로운 니즈가 갑자기 생기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큰 수량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빨리 상용화해 소비자에게 조달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무라타의 호황은 언제 시작된 건가.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라디오가 보급되면서 시작됐다. 튜브 형태로 된 지금보다 훨씬 큰 세라믹콘덴서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 50년대에는 전자제품의 발전과 함께 세라믹 소재 부문에서 여러 가지 발명품이 생겨났다. 특히 아버지는 교토대에 살다시피 하며 연구 결과를 공유하고 지원을 많이 받았다.”

-제품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한 가지 기술에 매달린 것 같다.
“그렇다. 세라믹콘덴서는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필수불가결한 부품이다. 아버지가 판단을 잘한 거다(웃음). 이 시장이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지금 이런 게 팔리면 다음엔 저런 게 많이 팔리겠구나’ 하는 예측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80년대 휴대전화가 등장했고 그때부터 현재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콘덴서를 작게, 더 작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했다.”

무라타가 개발한 각종 센서의 작용으로 서로 부딪히거나 넘어지지 않게 제작된 무라타 걸.

-앞으로 자동차나 헬스케어 부품 시장에 진출할 것이라고 들었다.
“현재 우리 사업은 통신부품에 50% 정도 의존하고 있다. 지금 보기엔 안정적인 성장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다.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선 앞으로 어느 부문이 성장 가능성이 있을지 둘러봐야 한다.”

-왜 자동차와 헬스케어인가.
“그 분야들에서 전자제품의 활용이 늘거나 기존에 사람이 하던 것을 전자화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전기차 개발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각종 전자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공장을 일본에 두고 있다. 공장의 해외 이전에 대한 무슨 원칙이 있나.
“우리는 매출의 40%를 신제품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출시된 지 3년이 채 안 된 신제품은 제작 공정에 많은 지원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일본 내에서 생산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신제품의 비중을 높게 유지하기 때문에 일본 내 생산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엔저 덕분에 수익이 높아졌겠다.
“하하, 그렇다. 환율이 달러당 1엔 움직일 때마다 30억 엔이 왔다갔다 한다. 그래서 또 엔화 가치가 잠깐 높아지면 수익이 확 낮아지기도 한다(웃음).”

-결과적으론 일본 내에 생산라인을 둔 건 탁월한 결정이었다.
“뭐, 엔저가 찾아올 줄 알고 그런 건 아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동안 모노즈쿠리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었나.
“나는 10년 이상 공정 과정에서 일했고 영업 쪽에서도 10년 이상 일했다. 나는 일본어로 이른바 겜바(現場)를 아는 사람이다. 내가 그냥 본사 사무실에 앉아서 일했다면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요즘도 현장에 가나.
“1년에 15곳에서 20곳 정도의 사업장을 방문한다. 물론 해외 사업장에도 간다.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내가 느낀 점을 사내 블로그에 올린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사장인 내가 뭘 느끼는지보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현장 실무자들은 내게 얼마나 많은 가이젠(改善)을 했는지 말해준다. 또 누가 진짜로 고생하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내가 들을 준비가 돼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그들에게도 좋다. 그들 스스로 더 개선하고 발전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의 기업문화에선 현장 직원들이 사장에게 가감 없이 말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하하, 아니다. 우리 직원들은 솔직하게 말한다.”
이때 인터뷰에 배석해 있던 홍보실 직원이 “나도 사장에게 무엇이든 다 말한다”고 거들었다.

-현장 직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경영에 실제 반영한다는 건가.
“내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룹워크(group work)를 더 중시한다. 각 그룹의 말단 사원도 그룹장에게 이러이러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런 제안을 할 기회가 항상 있다. 중요한 사안도 현장에서 직접 결정하게 한다.”

-사장으로서의 목표는 뭔가.
“우리 회사의 훌륭한 인재들이 스스로의 비전을 갖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다. 창립자가 도입한 경영철학도 마찬가지다. 우리 인재들이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우리 회사는 더 좋은 회사가 될 것이다. 그런 회사 분위기, 그런 마인드를 유지하는 게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일본 회사라기보다 서양 회사 같은 느낌이다.
“그런가. 서양 회사도 마냥 자유로운 건 아니다. 서양 회사에서도 엄격한 톱다운 의사 결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교토식 경영’을 따른다고 할 수 있나.
“글쎄, 난 별로 관심이 없다(웃음).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창업자가 주창하는 개념인데, 나는 그분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보편적인 개념은 아닌 것 같다.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로서 일본에서 뭔가 상위적이라는 느낌이 있다. 수도는 도쿄로 옮겨갔지만 교토 사람들은 ‘우리가 일본을 이끈다’ ‘우리가 혁신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일본 최고 수준의 교토대를 비롯해 교토에는 좋은 대학이 많이 몰려 있다. 그런 대학들의 연구 업적도 기업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그렇다고 명확하게 ‘교토식 경영’이라는 경영기법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다.”

-최근 미국의 페레그린 반도체를 인수했다.
“페레그린은 우리에게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 가운데 중요하고 강한 회사였다. 우리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스위치를 거기서 만들었다. 페레그린만 인수한 게 아니다. 기업 인수를 꾸준히 하고 있다. 주파수가 많아지면서 휴대전화 시장이 복잡해졌고 더 작은 공간에 온갖 기능을 다 집어넣어야 할 필요도 생겼다. 모듈(일련의 부품 덩어리)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이럴 땐 자체 기술을 개발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보다 경쟁력 있는 회사를 인수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형태의 인수합병을 할 것이다.”

-삼성전자는 무라타의 고객사인데 삼성전기는 콘덴서 시장 세계 2위의 경쟁사다.
“삼성전자는 큰 고객사이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계열사에서 모든 부품을 조달하지 않는 정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제품을 많이 사는 측면도 있다. 삼성의 새 CEO(이재용 부회장)가 있지 않나. 나는 그분이 반도체 경험도 있고 아주 유능하다고 생각한다.”

-휴대전화는 어느 회사 제품을 쓰나.
“삼성 갤럭시 시리즈를 쓴다. 일본 내에선 애플이 더 많이 팔리는데 내겐 삼성 스마트폰이 더 편하다.”

-삼성전기가 언젠가 무라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하하. 그럴 것이다. 삼성전기는 굉장히 빨리 따라오고 있고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모노즈쿠리 정신이 있다. 돈을 벌려고, 기계를 만들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든다. 이런 것은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존경하는 인물이 있나.
“음, 글쎄. 아버지다. 아버지는 지병이 있어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생에서, 사업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형제들에게도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이런 인생관은 요즘 보면 꽤 독특하다.”

-한국은 종종 방문하나.
“많이 가 봤다. 시골에 가서 백조 사진을 찍은 적도 있다. 그게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삼성 사람들이 데리고 갔다. 난(蘭) 가꾸기와 사진 찍기가 내 취미다. 어떤 회사의 카메라를 사용하느냐고? 그건 비밀이다.”



무라타 쓰네오
1951년 교토 출생
도시샤(同志社)대 경제학과 졸업
1974년 무라타제작소 입사
1989년 무라타 이사 선임
2003년 부사장, 2007년 사장 취임

교토=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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