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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LPGA도 점령한다] 안선주·이보미·신지애·김하늘…일본 필드 달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 선수들은 정말 강하다.”

8일 오키나와 류큐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다이킨 오키드 레이디스. 올해 일본 투어 개막전인 이 대회를 취재하러 온 일본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준코 이토이는 한국 선수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세 차례나 상금왕을 거머쥔 안선주가 건재하고 세계랭킹 1위까지 한 신지애 등이 가세하면서 한국 선수들의 전력은 더 강해졌다. 올해도 한국 선수들끼리 우승 경쟁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선수 중심 투어 매력, 20여 명 맹활약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뿐만 아니라 일본 여자투어에도 한국 골프 열풍이 거세다. 올 시즌 J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한국 선수는 20명이 넘는다. 해마다 투어 카드를 잃는 선수가 있지만 다시 새로운 얼굴이 유입되면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실리를 생각하면 투어 규모가 커진 한국, 명예를 생각하면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에 가야 하지만 일본은 그 둘을 적절히 충족시키는 무대로 인기다.

일본 투어의 가장 큰 매력은 ‘선수 중심의 투어’라는 점이다. 국내에선 그린 한쪽 구석에서 연습 시간에 제한을 받아가며 훈련을 했던 선수들은 일본 투어의 연습 환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2012년 일본에 데뷔한 이보미(27·코카콜라)는 "훈련 환경이 최상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대회에 맞춰 골프장 운영을 하기 때문에 언제든 라운드를 할 수 있다. 일본 코스는 페어웨이가 좁고 두 개의 그린으로 조성돼 있어 정교함이 중요한데 그런 코스에서 경기를 하다 보니 실력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코스 밖에서도 선수 중심의 편의 서비스는 이어진다. 선수들은 대회를 마치면 가벼운 짐만 챙겨 다음 대회 장소로 이동하면 된다. 골프 클럽은 클럽 하우스에서 택배 서비스를 신청하면 다음 대회장에 도착하기 전에 골프장으로 보내진다. 2001년 일본에 데뷔한 이지희(36)는 "예전에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 투어에서 활동하다 보면 내 운동만 할 수 있는 환경에 다른 투어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고 했다.

1985년 구옥희 첫 승, 총 158승 거둬

한국 선수들은 1985년 고(故) 구옥희(56)가 JLPGA 투어 첫 승을 거둔 이래 일본 무대에서 총 158승을 거뒀다. 일본 진출 25년 만인 2010년 7월 안선주(28·모스버거)가 스탠리레이디스토너먼트에서 100승을 채웠는데 그 이후 4년 반만에 58승을 추가했다. 선수들의 일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2011년(8승)을 제외하고는 2008년부터 해마다 두 자릿수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2012년에는 한 시즌 최다승인 16승을 합작했다.

미국 투어처럼 일본 투어의 주축은 1987~88년생 골퍼들이다. 87년생인 안선주는 지난해 4승을 거두며 2010, 2011년에 이어 세 번째 상금왕에 올랐다. 지난해 3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3위에 오른 이보미는 88년생 대표 주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이보미는 팬 클럽 회원이 수천 명에 달한다. 미녀 골퍼로 인기가 높은 일본의 코즈마 코토노 다음으로 인기가 높다. 일본 골프전문지 파골프의 한국인 기자 김명훈 씨는 “이보미는 사비를 들여 팬을 위한 선물을 준비할 만큼 팬 서비스를 잘한다. 일본인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코스의 외교 사절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LPGA 투어를 접고 지난해 일본으로 유턴한 신지애(27)도 인기가 많다. 지난해 4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4위에 올라 일본에서 ‘신짱 열풍’을 일으켰다. 2013년 2승을 거둔 이나리(27)는 지난해 우승은 없지만 상금랭킹 8위에 올라 주목받았다. 올해는 이보미·이나리와 친한 김하늘(27·하이트)이 일본 투어에 합류했다. 김하늘은 이나리와 이보미의 권유로 지난해 JLPGA 투어 퀄리파잉(Q) 스쿨에 응시해 13위로 통과하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김명훈 기자는 “일본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이 워낙 좋은 성적을 내기 때문에 실력 차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국 골프를 배우자는 분위기가 생기고 특수 고교에 진학해 골프를 하는 선수들도 늘어났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안선주·김하늘·신지애.

신지애 발끝까지 일본 기업 후원 받아

한국 선수들에 대해 감탄의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의 특성상 겉으로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도 강하다. 일본 골프 다이제스트 기자 준코 이토이는 "한국 선수들이 우승하면 아무래도 뉴스를 작게 취급한다. 일본 선수들은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는 기사도 나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일본에서 활동한 선수들은 후원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한국 기업은 국내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 기업은 자국 선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로고 없는 모자를 쓰고 활동한 선수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활동하는 선수 대부분은 일본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다. 신지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본 기업의 후원을 받는다. 일본의 공업용 본드 회사인 스리본드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했고, 엔진 회사인 자토코가 서브 후원을 한다.

자동차 회사인 닛산과도 계약을 했다. 일본 투어에서 세 차례 상금왕에 올랐던 안선주도 일본 패스트푸드 업체인 모스버거가 메인 스폰을 한다. 이보미는 일본 코카콜라와 메인 스폰서 계약을 했다. 전미정(33)은 일본 진로, 이지희는 일본의 골프 클럽 브랜드인 다이와의 후원을 받고 있다.

선수들은 이제 이방인이라는 생각보다 주인 의식을 가지고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다. 과거 일본에서 활동한 선수들은 언어와 문화적 차이 등으로 투어 생활에 적응하는데 시행착오를 겪었다. 상금만 벌어 가고 투어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맏언니 이지희·전미정 등의 주도로 소속감을 가지고 활동한다. 이지희와 전미정은 2011년 관동대지진 피해 복구 성금으로 약 4000만 엔(약 3억70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맏언니의 행동을 본 후배 골퍼들도 하나, 둘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신지애·김하늘의 매지니먼트사인 KPS 김애숙 본부장은 “한국 선수들이 와서 상금만 벌어가고 투어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번만큼 기부하고 스폰서나 팬에게도 잘 한다”고 했다.   

미국 투어는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거세질수록 투어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일본 투어는 오히려 반대다. 한국 선수들이 여자 투어의 인기를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JLPGA 투어는 올해 총상금 33억3300만 엔(약 310억원)을 걸고 37개 대회를 연다.

지난해보다 총상금은 7300만 엔(약 6억8000만원)이 많아졌고 대회는 1개 늘어났다. 김애숙 본부장은 “한국 여자 선수들이 맹활약하면서 일본 투어의 인기가 더 높아졌다. 한국 선수들이 일본 투어에 융화되자 점차 투어의 주축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지연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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