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펼친 거대한 책 공원을 걷다, 세상을 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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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책 테마파크’-세상의 배꼽중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나는 하늘의 책. 하늘과 억새를 안고 땅으로 푹 스민 원형 계단은 책을 읽다 거니는 산책로이자 명상 공간이며 야외 공연장이다. 바닥 가운데 우리 별 지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가 새겨져 있다.

세상에 공원 이름이 '세상의 배꼽'이다. 30일 오후 2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공원 안에서 준공식을 연 '책 테마파크'가 그렇다. 미술가 임옥상, 건축가 승효상, 시인 김정환, 조경가 김인수씨가 함께 만든 공원은 지상의 책 한 권처럼 보인다.

김정환 시인이 털어놓은 작명의 변은 뜻이 깊다. "누구나 태어날 때 세상 또는 자연과의 연결고리인 탯줄의 흔적으로 배꼽을 지닌다. 책은 인간의 정신이 탄생하고 돌아가는 혼의 배꼽 아닐까. 1800평 땅 위에 책을 주제로 한 공원을 짓는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세상의 배꼽'이 떠올랐다."

'책, 冊, 本, LIVRE, BUCH, LIBRO, BOOK….' '세상의 배꼽'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맨 먼저 만나는 형상은 책을 뜻하는 세계 각국 언어다. 나지막한 동산을 끼고 살짝살짝 하늘로 오르는 150평 건물은 온통 책 얘기로 둘러 싸여있다. 책 카페.자료실.전시공간.시청각실이 들어선 집은 널찍널찍 공백이 많고 어느 곳으로나 쑥 나갈 수 있게 외부 통로도 여럿이다. 임옥상씨는 "책을 읽는 일은 또한 생각을 하는 것이기에 공간이 사람 몸과 마음을 조이거나 가두지 않도록 확 터놓았다"고 말했다.

도서관을 나선형으로 감싸고 있는 화강석 외벽은 책을 말하는 모든 문자를 담은 벽화다. 인류가 이제까지 남긴 문화와 기호 가운데 고갱이만 추린 이미지가 200m에 걸쳐 꼼꼼하게 새겨져 있다. 이 벽만 다 읽어도 인류사를 한 번 훑은 셈이 된다. 한국 민화 중 책가도도 있고 세계 유명 만화 이미지도 등장한다. 이들을 꿰는 주제는 '자유와 평화'다.

언덕을 넘으면 억새밭이 펼쳐진다. 책을 읽다 쉬는 산책로이자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설 수 있는 반구 모양의 야외공연장 '하늘의 책'이다. 가운데 바닥에 하늘에 그린 우리별 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별처럼 빛난다. '세상의 배꼽'에 오면 배꼽 빠지게 책과 놀 수 있다. 02-3216-1876.

성남=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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