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참으로 전쟁은 고생스럽고 기막힌 것이지만 이 전쟁을 하늘이 우리에게 준 통일의 기회로 받아들여 기필코 우리가 민족의 숙원을 이루는 영광의 역사를 이룩합시다.
지난 40년동안 다른 자유국민들이 자기나라를 위해 싸울적에 우리는 노예처럼 일제에 짓밟혀 억지로 전쟁터에 끌려나갔지만 지금은 내 나라의 자유를 찾기 위해 용사로서 조국의 성전에 목숨을 바치는 자랑스러운 기회입니다.

<눈물로 끝맺은 연설>
남북통일 없이는 조국과 민족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자유를 누릴수가 없습니다. 저 포악무도한 공산당을 완전히 물리치고 조국방위의 영광스러운 책임을 다하여 우리민족의 삶의 터전이요, 조상의 유업인 이강토를 지켜나가기를 이 늙은 동포는 부탁하는 바입니다.』
이연설을 마친 대통령의 눈에는 눈물이 괴어 있었다.
신국방은 우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국방장관은 대통령에게 오늘 아침 정일권 참모총장이 보고해온 한미합동 작전회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전회의에서 모든 지휘관들은 각사단과 각군단의 담당지역 분할문제를 토의했다. 미10군단은 비교적 큰 지역을 할당받았다.
「알몬드」 장군이 당신네 한국군을 우리가 돕기 위해 이지역에서 제일큰 부분을 담당하겠다고 했는데 그점에 대해 정일권 참모총장은 찬성하지 않았다.
정일권 장군은 「알몬드」 장군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실지로는 우리한국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미군들이 큰 간선도로를 다 차지하게되면 우리군대가 이동할 때나 군수품을 수송할 때 이쪽 뜻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우리국군과 미군들은 합의해서 각기 큰 도로 하나씩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장군은 우리군대가 적어도 더 많은 장비들을 갖지 않는한 유엔군의 일부가 되어 같은 방식으로 싸울수는 없다고 말했다.
차라리 우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독립해서 싸우는 것이 나을 것이고 워낙 무기가 부족해서 우리가 할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정장군은 설명했다.
속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유엔군과 똑같은 무기와 장비를 가지고 싸우고 있는줄로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중무기를 겨우 17문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데 비해 당신들은 72문이나 보유하고있다고 정일권 장군은 지적했다.

<"독자전이 낫겠다">
너무 여러번 되풀이 해온 같은 이야기지만 미군들은 비행기 4백대가 공중지원하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한대도 없다. 우리공군이 조종하는 비행기들도 모두 유엔군휘하에 예속되어 미군측이 지원명령을 하지 않는한 그 비행기들은 우리지상군을 지원할 수가 없다. 우리가 공중지원을 요청했을 때 이쪽이 원하는 시간에 우리는 효과적으로 지원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미군사고문관들은 우리들이 급박한 상황에서 공중지원을 요청할 때도 언제나 확인한 후에야 겨우 보내주었기 때문에 차라리 공중지원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유리할 때가 많았다.
더우기 우리측과의 통신연락도 잘 안되고 있다. 미군사고문단의 장교들이 통신망을 독차지 하고있어 우리는 원하는 연락과 통신을 원활히 할 길이 없다고 정일권 장군은 이야기했다.
「리지웨이」 장군은 정일권 장군에게 우리가 만일 1백대의 비행기를 한국군에 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정장군은 우리는 1백대의 비행기를 우리에게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지상군을 제대로 지원할 수 있도록 그 비행기들을 적재적시에 배치해 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지웨이」 장군은 우리가 원할 때 즉시 공중지원을 받을수 있도록 재편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리지웨이」 장군은 우리군대를 위해 해주어야할 몇가지 일에 대해서는 무척 빡빡하게 이견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신국방 장관은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사실상 우리 나라의 재정이 곤란해서 우리 비행기가 없기 때문에 대통령은 일선을 시찰할 때 미공군기 신세를 지고 있는 지금의 형편이 일국의 국가원수로서 떳떳하고 마음 편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장병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틈을 내어 그토록 열심히 일선장병들을 자주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일선시찰 때는 우리장병들에게 가장 필요한 양말·수건·내의·식료품 등을 2만여점 전달하였다.

<양말·내의 꾸려보내>
이번에는 자진해서 나도 대통령을 위해 간직해 두었던 양말과 내의와 약품까지도 몽땅 싸서 신국방에게 내주었다. 단 한개라도 더 우리장병들에게 가져다주고 싶어하는 대통령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은 미군에 비해 우리장병들을 잘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하고 무기도 제대로 줄수없는 우리 나라와 어려운 재정과 형편을 무척. 가슴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마치 가난한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식들을 남같이 잘해줄 수 없을 때 속으로 애태우며 안타깝게 느끼듯이 항상 대통령은 우리장병들에게 남달리 깊은 애정과 연민의 정을 쏟고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