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본 '2006 지구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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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국제 정치는 암울하지만 세계 경제는 밝다."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내년도 세계 정세를 예측한 '2006년 세계'에서 내놓은 전망이다. 세계 경제는 장밋빛은 아니지만 안정된 가운데 성장세를 이어가는 분홍빛으로 전망된다. 반면 국제 정치는 미국이 이라크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척이는 양상으로 특징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세계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성장을 계속해 2026년이면 구매력 기준으로 세계 1위의 국내총생산(GDP)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2006년 세계를 '위기 속의 낙관'으로 요약했다.

세계 경제의 성장은 내년에도 계속되겠지만 지난 2년간의 기록적인 성장 속에서 위기가 고조됐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최고 수준인 세계적 부동산 거품과 2001년 말 이후 세 배나 오른 국제유가는 급속한 경기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취약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낙관이 가능한 것은 중국의 여전히 값싼 노동력 공급과 안정된 금리, 물가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세가 다소 둔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독일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면서 세계 경제의 뒤를 받쳐줄 것으로 보인다.

국제 정세는 별로 나아질 게 없을 전망이다. 이라크전의 악영향이 미 국내 정치에 미치면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겐 최악의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세계 전략을 수정할 정도의 위기에 처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뉴스팀

# 미국 : 부시와 이라크 전쟁

2006년은 야심가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만일 부시가 이라크에서 실패하면 내년은 미국 역사에서 베트남전 이후 최악의 해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부시 대통령에게 새해는 이라크의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새 정부가 과도정부보다 효율적이길 기대한다. 하지만 미국이 한 일이라고는 이라크 헌법을 마련한 일 말고는 별로 없다.

혹시 이라크의 새 정부가 너무 약체여서 자치능력을 보유하지 못할 경우 미국과 영국은 군사력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그 경우 저항세력의 테러와 폭력은 계속될 것이고, 자칫 내전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만일 이라크 내 소수파인 수니파가 12월 이라크 총선에 참여하고, 그 결과 그들이 새 정부에서 보다 큰 발언권을 갖게 되면 폭력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아파가 수니파와 권력을 나눠 가질 각오가 돼 있지 않는 한 정국은 쉽게 안정되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에서 미군 사상자 수는 계속 늘 것이고, 미국 내 여론은 악화할 테지만 미군이 갑자기 철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년은 미국에 중간선거가 있는 해다. 부시 정부가 허리케인 대처 과정에서 무능을 노출했지만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잃을 것 같지는 않다. 정치의 양극화로 유권자들의 편가름 투표 성향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파는 부시의 지지율 하락과 상관없이 공화당 지지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내년을 어젠다 재정립의 해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달리 부시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주의자다. 부시는 지난 5년간 돈을 펑펑 쓰면서도 세금은 깎아줬다. 이건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9%에 이를 것이다.

# 한반도와 동북아 : 변화와 갈등

동북아의 2006년은 기존의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구도를 암중 모색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우선 주한미군 지상군과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은 앞으로 10년 안에 철수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 등 급변하는 주변 정세▶미군 주둔지역에서의 반미감정 고조▶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화적 태도 등이 주된 이유다. 미국은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이 개입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과 일본이 자국 내 미군기지 사용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은 식량난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힘든 한 해를 보낼 것이다. 북핵 6자회담도 베이징 공동성명의 취약한 구조 때문에 힘겨운 협상이 계속될 전망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 구도 또한 좀 더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일본 간 갈등관계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적극 옹호하는 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이 내년 9월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세계 경제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중국의 경제개발 붐이 진정 국면에 접어드는 반면, 일본은 장기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 경제대국으로서의 입지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 유럽 : 더 멀어지는 통합의 길

EU 헌법안 비준 국민투표는 2006년에도 제대로 순항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해 프랑스.네덜란드가 보여준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국민투표가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부결은 단순히 헌법안을 거부한 데서 그치지 않고 EU의 통합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는다. 그나마 2004년 동유럽 10개국 가입까지 순조롭게 이어져 온 EU 확대도 난관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으로 예정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회원국 가입이나 현재 진행 중인 터키의 가입 협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이슬람에 대한 반감도 계속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EU가 비틀거리는 큰 배경은 어려운 경제상황이다. 유럽을 침체에 빠뜨린 근본적 원인은 10여년간 계속되는 저성장과 고실업이다. EU 집행위 등 통합의 주역들은 시장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외쳐왔다. 그러나 프랑스 등 유럽의 주류는 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여전히 자국의 노동자와 기업을 외국과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유럽의 고질병인 과잉 규제와 방만한 공공 지출, 과도한 사회보장 문제는 2006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 아프리카 : 기대와 좌절의 악순환

아프리카에도 희망은 있다. 7월 선진 8개국(G8)은 아프리카 14개 최빈국의 부채를 100% 탕감해 주기로 약속했다. 또 현재 매년 250억 달러를 도와주는 특별원조도 2010년까지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문제는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기 힘들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형평성에 맞게 탕감액을 조율하는 과정이 간단치 않다. 또 특별원조를 받으려면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체 개혁 노력을 해야 한다는 조건부다. 부패한 나라일 경우 원조를 해줘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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