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2) 제80화 한일회담(14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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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의 북송결정은 24보안법 파동으로 얼어붙었던 국내정국을 녹였을뿐 아니라 그로 인한 한미간의 불편한 관계도 해소시켜 주었다.
「다울링」주한미대사는 이대통령과의 면담기회는 물론 조장관이나 나를 만날 때마다 비민주적방식으로 처리된 보안법률과에 대한 미국의 불만을 집요하게 얘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북송결정에 따른 여야의 일치된 반대운동으로 24파동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나는 지금도 당시의 여야지도자들이 국난에 슬기롭게 대처한 금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보안법파동과 관련해 정부는 모든 가두시위를 금지하고 이 금지를 어길경우 의법처리했다.
정부는 그러나 일본의 북송결정이 있은 직후 데모금지를 해제했고 야당도 정략적 차원에서 일체 이를 이용하지 않아 주한외교사절들은 한국야당의 성숙한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일부 언론이『데모금지가 해재됐는데도 민주당이 보안법반대 데모를 못하는 것을 보면 종전의 반대태도는 분명히 인기전술과 선전술에 불과한 것』 이라고 빈정거렸을 정도였다.
언론은 또 북송반대 데모행렬앞에서『북송반대』라고 외치고 그뒤를 따르던 민주당원들이 『보안법도…』하는 구호를 화답하면 효과 1백%의 데모가 될 것이라고 민주당의 보안법 반대 운동강화를 은근히 부추겼다.
그러나 조병옥 민주당대표최고위원은 대구의 일부 민주당원들이 북송반대 데모때 보안법반대 구호를 외친 사태에 대해『전혀 지방당부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며 이 운동만은 순수한 국민운동으로 참가하겠다』고 밝혀 북송반대운동을 보안법 반대운동과 결부시키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야당의 이같은 애국적 행동은 이 운동의 거국걱 추진을 용이하게 했다. 야당측은 정부·여당의 범국민운동 추진에 기꺼이 참가했으며, 당시 자유당 정략본부였던 파고다호텔에서 열린「재일 한인북송반대전국위」추진모임에 대표를 파견해 신문가십난을 장식하기까지 했다.
2월14일 파고다호텔의 자유당회합장에서 자유당의 박용익원내총무·정운갑의원, 민주당의 김의택·조재천의원, 무소속의 이재형의원 및 나는 전국위의 기구와 규약등에 관해 협의했다.
15일에는 국회의장실에서 원내각정파 대표들과 나는 발기준비위를 갖고 16일에 정당·사회단체·언론·문화·경제계등 각계대표 4백여명이 참석한 전국위 결성식을 갖기로 했다.
동숭동 서울대강당에서 열린 16일의 결성식에서 양일동의원의 사회로 장택상반공투쟁위원장이『피묻은 일본의 손에 한대 얻어맞았다』는 개회사를 했고, 이어 규약안 및 지도위원 3명·고문단·선전등 5부 간사들이 선출됐으며 대적십자국제위원회 메시지등이 채택됐다.
이기붕(자유당)·조병옥(민주당)·장택상(무소속)씨등 3명이 지도위원으로 선출됐듯 철저하게 초당파적으로 조직이 짜여졌다.『재일한인을 북한에 송환하려는 일본정부의 불법적이며 비인도적인 조치를 반대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함으로써 이를 저지할것』을 목적으로 발족된 전국위는 그후 1년여간 그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전국적 운동의 충실한 모체가 됐던 것이다.
야당은 또 보안법파동 이후 2개월만에 처음열린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북송반대결의안을 통과시켜 한국의 정쟁을 북송추진의 호기로 이용하려던 「후지야마」외상의 간계를 여지없이 분쇄했다.
이어 21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위의 북송반대 전국민 궐기대회에는 7만여명이 참가해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내외에 과시했다. <계속>

<사진>서울운동장을 꽉 메운 여야공동의 북송반대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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