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해빙 모색하는 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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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의 새 지도자「콘스탄틴·체르넨코」는 13일 서기장직 수락연설에서 초강대국들의 평화공존과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하면서도 소련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뚜렷이 했다.
이는 「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의 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은 입장으로 소련의 대미 정책이 당분간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미국 중거리 핵미사일의 유럽배치가 양국관계의 「암초」로 남아있는 현 상태에서 소련은 미국의 새로운 움직임이나 제의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도 볼수 있다.「레이건」행정부의 대소 정책은 70년대를 통해 미국이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동안 소련은 데탕트 분위기를 이용해 군비를 증강, 미국의 군사력을 앞질렀다는 전제에서 시작했다.
그러한 전제 아래「레이건」행정부는 지난 3년 동안 매년 국방비를 증강해「역전된」군사균형을 바로잡는데 전력을 기울여왔다.
그와 같은 정책상의 필요와「레이건」개인이 갖고 있는 반공의식이 겹쳐져「레이건」행정부의 전반적인 외교정책은 소련에 대한 대결노선을 주조로 삼게 되였고 일부 비판자들은 미소 관계가 쿠바 미사일 위기이래 가장 악화된 상태에 빠졌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레이건」행정부 아래서 가장 큰 대소관계의 쟁점은 서구에 퍼싱П와 쿠르즈 미사일 등 중거리 핵무기를 배치하는 문제였다. 모스크바를 포함한 소련의 중추부를 10분 안에 강타할 수 있는 이 핵무기의 배치여부를 둘러싸고 양국간에 진행된 오랜 경쟁은 지난해 11월 첫 미사일들이 영국과 이탈리아에 배치됨으로써 일단 미국에 승리를 안겨줬다.
이에 대해 소련은 미리 경고 한대로 지금까지 미소 대학의 기본 창구였던 제네바의 중거리 핵 협상(INF)과 전략무기협상(START)테이블에서 퇴장함으로써 대화의 큰길을 단절시켜 버렸다.
소련은 미국이 중거리 핵무기의 서구배치를 중단하지 않는 한 이들 협상에 다시 응하지 않겠다고 버티고있다.
미소 관계가 이처럼 냉각되자「레이건」행정부는 84년 초부터 소련에 대한 감정적인 비난을 삼가면서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기 시작했다.
소련이 「악의 원천」이라고 매도하고 세계 모든 분쟁이 소련에 의해 도발되고 있다는 극단적인 소련관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소련의 반발을 필요이상으로 자극해온「레이건」행정부가 이처럼 태도를 바꾼데는 몇가지 전략적·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첫째 「레이건」행정부는 지난 3년간의 군비증강으로 소련에 대한 군사적 열세를 만회했다고 믿고 이제는 힘의 입장에서 소련파 협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런 자신감은「레이건」대통령의 금년도 연두교서속에 여러번 나타나 있다.
둘째는 서구에 중거리 미사일을 계속 배치하기 위해 서구국가들을 무마해야하는 필요성이다. 79년에 나토 국가들이 미국의 중거리 핵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을 때 거기에는 미국이 핵 배치를 압력수단으로 해서 소련이 SS-20미사일을 제거하도록 하기 위한 협상에 노력을 기울인다는 단서가 붙어있었다.
그런데「레이건」행정부의 지나친 반소선전활동이 반작용을 일으켜 서구국가 안에서는 미국이 협상보다 핵 배치에 더 관심이 있다는 비판이 일어나 퍼싱과 크루즈미사일의 계속 배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 위협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소련에 대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 협상이 순조롭지 못한 책임을 소련 측에 넘길 필요가 있다.
셋째, 대통령 선거의 해를 맞아「레이건」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자기가 전쟁보다는 평화에 더 큰 관심이 있는 인물임을 설득해야 되는 입장에 있다. 그레나다침공과 중동개입 및 중미 군사개입으로 그가 너무 군사만능주의자라는 인상이 앞으로의 선거에서 쟁점이 될듯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워싱턴의 지배적인 관측은 소련지도자가 바뀌었어도 금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전재의 냉각관계엔 별다른 호전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지난 3년 동안「레이건」행정부로부터 여러모로 수모를 받아온 소련이「레이건」의 재선을 도와줄 화해를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소련이 다시 핵 협상 테이블에 나타나고 미국과의 관계가 적어도 냉각된 상태로 원상회복 될 가능성이 보인다는 견해가 나오고있다. 그런 견해의 근거는 소련국내 뿐 아니라 자기들 세력권인 동구권에서까지 경제적 침체로 위기를 맞고있는 소련이 또다시 미국과 대적해서 값비싼 군비경쟁을 시작하게되는 상황을 적극 피하리라는 점이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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