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일」의 성실한 실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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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얼마전 일이다. 설악산의 어떤 세미나에서 강의를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울 가까이 오는데 「검문소앞 제차정지」 라고 적힌 푯말이 길 한가운데 있었는데 검문소에는 사람도 없었고 「제차정지」 라는 푯말을 보고도 기사들은 아랑곳없이 차를 몰아댄다.
또 어떤 날이다. 이발소를 찾아갔는데 이발소앞에 「영업중」 이라고 엄연히 표시를 해놓았는데 그 이발소는 그날 영업을 하지 않았다.
동대구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구내 방송으로 『부산행 새마을호는 정시보다 3분 연착된니다』라고 대중앞에 큰소리로 외쳤는데 그 기차는 8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지방에 볼일이 있어 직행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양에게 빈좌석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섯개나 자리가 비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버스에 올랐더니 자리는 한개도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독자들은 도리어 이글을 쓰는 나를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 정도야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하고.
그러나 우리는 작은 일에 성실치 않을때에는 큰일에도 성실할수 없다는 원칙을 알아야한다.
「제차정지」 푯말을 보고도 정지하지 않아도 좋다는 그자동차 기사들의 사고방식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밤10시만 되어도 붉은신호를 무시할수있는 비리의 인간상이 무섭지 않은가? 「영업중」 이라고 써놓은 푯말을 귀찮다고 치울수 없다면 귀찮다는 이유로 남의 인권을 쉽게 유린할 수 있지 않겠는가? 3분연착이 8분으로 연장이 되어도 정정할 줄 모르는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국가의 중요계획을 세우는데 필요불가결한 통계가 잘못되었을때도 그대로 스쳐지나가는 상례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좌석이 없는데도 무조건 손님을 태워 놓고 보자는 심산이라면 절대원칙이 없는 소위 「적당주의」적인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고질인 불신의 씨앗을 그대로 옮기는 꼴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의 몇가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우리 주변에는 너무나도 작은 일들이 너무나 소홀히 처리되고 있다.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건에 철저하지 못하고 어찌 멀리있는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가장 작은 일을 비범하게 처리 못하면서 어찌하여 큰일들을 일답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
이건 한마디로 너무나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이다.한국적인 「적당주의」는 대전제없는 논리이론의 근본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정확한 대전제없는 결론은 항상 오류를 범한다는 극히 기초적인 사고방식도 없는 우리들이다.
그래서 많은 예산을 들여 집앞길을 깨끗하게 포장하더니 한주일 후에 길옆을 파헤친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하수도 공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며칠후에 반대편 길을 또 파헤친다.그 이유는 전화선을 묻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사가 이렇게 비논리적인 사고방식이라면 우리의 앞날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작은일에 충직한 종에게 큰 일을 맡긴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가 내 주위에 일어나고 있는 작은 일들을 성실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에서 내일의 새로운 희망을 걸수 있을 것이다.보기에 하찮은 담뱃불 하나가 수십정보의 산을 태우는 엄청난 결과를 보고있지 않는가.
이왕 쓰고야말 편지의 회답을 미루다가 친구끼리의 우정을 깨어버리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돈을 모으는 사람도 절대원칙이 없이 일확천금을 노리고,권력을 노리는 사람도 한걸음 한걸음의 질서를 무시하고 논리비약을 하고자한다면 그결과는 스스로의 불행을 면할수 없다.
「좀도둑이 소도둑된다」고 했다.처음부터 소도둑이 되지않고 먼저 좀도둑으로 시작된다는 교훈이 아닌가? 하찮은 좀도둑을 눈감으면 그것이 소도둑이 되어버린다.
우리 모두가 작은일에 성실하고 정직할때 우리 사회전체는 밝아진다.작은 일을 소홀히 하고 무시할때는 언제 어디서 어떠한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의 사회가 된다.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도사리고 있는 작은 불신이 깡그리 씻어지는 그날 우리 사회는 밝아질 것이다.작은 일들이 하나하나 정확하게 처리될때에 우리는 내일의 복지사회를 희망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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