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에 오른「레바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회교민병대가 지난 이틀사이 서 베이루트지역을 완전 장악함으로써 레바논사태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5일「샤피크·와잔」수상내각이 총 사퇴한 후 격화된 회교민병 대와 레바논 정부군간의 베이루트공방전은 75∼76년 레바논 내전이래 레바논사태를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는 곧 작년11월 이후 간헐적으로 계속돼 왔던 휴전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시사하는 것이고「제마옐」대통령 정부가 파국에 직면하고 선거를 앞둔「레이건」대통령이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지게 됐음을 의미한다.「제마옐」대통령은 5일「와잔」수상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정처개혁 ▲제네바민족화합회의 재개 ▲현 내각의 사퇴 ▲거국내각구성 ▲남·북부 레바논의 새로운 지역에 레바논정부군 이동배치 ▲전면휴전을 위한 즉각적인 협상개시 ▲시리아와의 장래관계 회담 개최 ▲시리아 및 이스라엘군의 철군협상개시 등 8개항의 평화방안을 발표하고 오는 27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레바논민족화합회의에 참가해줄 것을 회교도 파에 호소했다.
그러나 회교도 파의 지도자인「줌블라트」는『적(제마옐 대통령을 지칭)과는 정치적이건 군사적이건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오히려 정부군 안의 회교도들에게 정부군대열에서 이탈할 것을 요청했었다.
이렇게 양파간의 대립이 첨예화한 것은 그 동안 레바논사태 해결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협상에서 권력배분을 재조정하는「개혁」과 무력 대결을 중지시키자는「치안유지」중 어느 쪽을 먼저 성취시키느냐하는 문제에서 양측주장이 해결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마옐」측은 먼저 치안유지를 이룩한 후에 정치문제를 해결하자고 했고 회교도 측은 개혁의 보장 없이는 투쟁을 종식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정치협상이 쉽게 이뤄지지 않은 것은 레바논사태가 단순한 국내문제가 아니라 이미 시리아와 이스라엘, 나아가 소련과 미국간의 대결이라는 국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얽히고 설켜 있었기 때문이다.
레바논사태해결의 중요한 장애물이 되고 있는 레바논과 이스라엘간의 외국군 철군협정 (83년5월17일 체결)은 곧 시리아와 이스라엘 군대의 레바논주둔을 합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었다. 당시 이스라엘 측은 75년 내전당시 아랍연맹 평화 군 자격으로 레바논에 파병된 3만 명의 시리아 군이 철수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북부국경의 안보를 위해 남부레바논에 주둔중인 이스라엘 군을 철수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었다.
이번의 사태발전으로「레이건」행정부는 미 해병대의 레바논주둔을 둘러싸고 또다시 딜레머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레이건」대통령은 그 동안 여러 차례 미군의 철군은「제마옐」정부의 붕괴를 가져오고 그것은 곧 레바논을 더욱 혼미상태에 빠뜨릴 것이라며 미 해병대의 주둔을 고집해 왔었다.
이번 사태로 미 해병대는 일단 베이루트 앞 바다에 떠 있는 미 6함대 해상기지로 철수하게됐으나「레이건」행정부가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군사적 개입을 계속할 것은 틀림없다. 미국은 함포 사격 등 즉각적인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소득을 얻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기독교파와 회교 파간의 군사적 대립이 확대될 경우 양파의 배후세력인 시리아와 이스라엘이 어떠한 형태로든 직접 개입할 명분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레바논사태는 또 다른 국제 전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게된다. <이규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