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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산책] 발레리노 같은 몸매의'얼짱 주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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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왼손 스트레이트 맛 좀 볼래요?" 금의환향한 다음날인 23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만난 이옥성이 활짝 웃으며 '금 주먹'을 내뻗었다. 박종근 기자

1m55cm의 키에 몸무게가 고작 24kg이던 중1 소년이 있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복싱 선수들의 몸동작에 반해 아버지를 졸라 무작정 권투를 시작했다. 몸무게에 맞는 체급이 없어 경기에 나가지도 못했고 또래들과 스파링을 하면 얻어터지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복싱이 좋았다. 길거리에서는 페인팅으로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주먹을 뻗었다.

"중학교 때 88올림픽 복싱 장면을 재방송으로 봤는데 변정일 경기가 나왔어요. 폭발적으로 치고 빠지며 쉴새없이 몰아쳐 상대가 제대로 주먹도 못 내미는 거예요. 현재의 저랑 붙는다면 제가 어림도 없을 거예요."

▶복싱계의 얼짱

변정일을 닮고 싶었던 소년 이옥성(24.보은군청)은 12년 후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로 세계복싱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 대 7 정도로 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붙으니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일 중국 미안양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플라이급(51kg) 준결승에서 맞붙은 무하마드 워런(미국)을 두고 한 말이다. 복싱 관계자들은 물론 이옥성 자신도 최강자라고 여겼던 워런을 44-27로 꺾었다. 결승전을 앞두고는 긴장이 돼 '딱 한 시간' 자고 링에 올랐는데 쿠바의 에르난데스마저 31-20으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복싱 세계 최강자의 주먹은 의외로 '예뻤다'. 작고 보드라웠다. 얼굴은 '더 예뻤다'. 이옥성은 복싱계 '얼짱'이다. 인터넷 팬 카페(cafe.daum.net/leeoksung)도 있다.

▶"기석이 한 번 이겨봤으면"

그에겐 천적이 있다. "백전백패예요.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따는 것보다 기석이 한 번 이겨보고 싶어요."

세계 1인자인 이옥성은 국내 2인자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기석(25.서울시청). 100번은 아니지만 고2 때 전국대회에서 2-3으로 진 뒤 10월 울산 전국체전 준결승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김기석의 벽을 넘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면 항상 기석이한테 (이겨서) 미안하다는 얘기만 듣다가 이번에 축하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1980년대 밴텀급 라이벌 문성길과 허영모를 떠올리게 하는 둘은 고교 때 코르크급(45kg)에서 시작해 라이트플라이급(48kg)을 거쳐 플라이급으로 체급을 올릴 때까지 항상 함께였다. 가까이는 내년 도하 아시안게임, 멀게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둘은 또 부딪치게 된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원없이 해보고 싶어요." 앞으로는 더욱 만만찮은 대결이 될 것 같다.

▶꿈은 체육선생님

그는 현재 대학원생이다. 서원대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꿈은 세계챔피언이었고, 중학교 이후부터는 줄곧 체육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첫 번째 꿈을 이룬 그는 두 번째 꿈을 향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고 있다. 이미 교사 자격증도 따놓았다. "그래도 34세까지는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때까지 체력이 버텨줄지는 모르겠지만."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은 선수 자격을 만 34세로 제한해 놓고 있다. 군대도 가야 한다.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아 상무와 공익근무요원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세계선수권 우승자에게는 병역특례 혜택이 없다. 4급을 받은 이유는 지병인 목 디스크 때문이다. "증상이 심할 때는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어색한 자세로 있어야 돼요."

그러고 보니 그의 목은 꽤 길었다. 긴 목에 1m72cm의 쭉 빠진 몸매가 발레리노를 연상케 했다. "이젠 맞는 게 무서워요. 예전에는 한 대 맞으면 오히려 투지가 생겼는데 이제는 안 맞고 때리고 싶어요."

이충형 기자<adch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생년월일: 1981년 2월 7일

▶출생: 경남 진주(2남1녀 중 막내)

▶체격: 1m72㎝, 54㎏

▶주무기: 스트레이트

▶별명: 깐돌이, 이박사

▶경력: 장재초-중앙중-경남체고-서원대-보은군청

▶주요 성적

-2004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복싱대회 플라이급(-51㎏) 우승.우수선수 선정

-2005 아시아복싱선수권대회 플라이급 우승

-2005 세계복싱선수권대회 플라이급 우승

-국제대회 전적: 22전 20승 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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