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등 장면 그려 전시회 연 정명화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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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씨(오른쪽)가 단역 배우인 남자 친구 조덕제씨와 함께 영화 '바람난 가족'속 장면을 그린 작품 앞에 서 있다. 임현동 JES 기자

"남들에겐 제 남친(남자 친구의 줄임말)이 단역 배우겠지만 제 눈엔 언제나 주인공입니다."

단역 배우인 남자 친구를 소재로 한 이색 전시회를 연 미술학도 정명화(29.성균관대 대학원 재학)씨. 그는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 조덕제(37)씨가 나오는 영화 속 장면들을 캔버스에 옮겨 29일까지 서울 인사동 공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전시된 아홉 점의 그림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초록물고기''바람난 가족''그때 그 사람들''살인의 추억'등 조씨가 출연한 작품 속 장면이긴 한데, 그림마다 조씨의 얼굴은 선명한 반면 백윤식.김상경.문소리씨 등 함께 등장하는 스타들의 얼굴은 흐리게 처리돼 있다.

"제 캔버스 위에선 남자 친구가 주연이기 때문에 스타들의 얼굴은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게 맞췄어요. 구도도 제 남자 친구가 중심이죠. 하지만 그분들께 악감정이 있는 건 절대 아니에요.(웃음)"

예컨대 '살인의 추억, 그 안에'란 그림에선 조씨의 눈동자는 부리부리 빛나지만 김상경씨는 눈이 거의 생략돼 있다. 조씨는 이 장면에서 변사체에 붙은 반창고를 떼는 김씨에게 호통치는 감식반 형사로 나왔다.

정씨는 "처음엔 스무 점 가량을 그릴까 했는데 그간 남자 친구가 출연한 장면을 죄다 모아봐도 아홉 장면 밖에 안 되더라"며 "4월부터 학교 작업실에서 정지시켜 놓은 비디오 화면을 옆에 놓고 반년간 그렸다"고 말했다.

"애인 직업이 배우라고 하면 다들 '누구냐'며 동공이 확대됐다가 이름을 듣고 난 뒤엔 슬그머니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리더라고요. 마치 '밥은 먹고 다니냐'는 듯한 연민 어린 표정을 마주할 때마다 솔직히 자존심도 상했고요. 오빠의 기를 살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전시회를 열게 됐습니다."

이런 정씨의 정성에 감복한 조씨는"저를 위해 이렇게 전시회를 마련해 준 여자 친구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땀 흘리는 배우가 되겠다"고 했다.

조씨는 대학로에선 꽤 유명한 연기자다. '청춘예찬'(2000)'대대손손'(2001)'뛰는 놈 위에 나는 놈'(2005) 등의 무대에 올랐다.

산울림.성좌를 거쳐 현재는 극단 골목길의 소속 배우다. 영화엔 지난해부터 뛰어 들었고, 최근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출연했다.

김범석 JES 기자<kbs@jesnews.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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