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929>|제80화 한일회담(128)|김동조|조병옥의원 발언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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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총련이 일본좌익계열과 손을 꽉 잡고 북송음모를 격렬하게 획책하고 있을때 우리 재일거류민단은 10월 9일 조총련의 공작을 저지키 위한 대책으로 「북한강제노동자모집방지대책위」를 구성했다. 민단은 또 형세가 한층 예각화 되어 가던 10월 27일 긴급중앙위원회를 열어 재일교포북송반대운동지침을 마련했다.
이 지침에 따라 민단 각 지부는 성명을 내고 북송공작의 허구성을 폭로하기 시작했으나 도도한 북송공작움직임에 비하면 한낱 일섭편주 같은 방안이었다. 민단 또한 이 가증스런 음모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때문이었는지 58년 말까지는 다소 미온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11월 발표된 민단석천현 본부의 성명은 『조총련의 감언에 침묵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조총련의 표변한 재일교포대책에 초점을 맞춰 그 기만성을 폭로하는데 그쳤다.
지금 여러 가지 자료를 종합해보면 일본정부는 11월초 조총련의 북송음모에 대해 다각적인 분석을 1차적으로 끝내고 그 손익계산을 한 결과 조총련에 동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언론들은 외무성당국자를 인용해 한일회담의 결렬을 예상하면서도 치안상 송환하는 것이 낫고 일본으로서는 최근 북한의 동향으로 봐서 송환선의 입항과 재일교포의 출국만 인정하면 된다고 보도했다.
일본정부의 정책에 으레 반대입장을 취해왔던 일본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북송에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또 한 사람의 한국인이라도 더 일본 땅 밖으로 내몰려는데 대해서는 좌우의 대립이 있을 수 없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이 같은 정세 하에서 법무성·경찰·후생성·외무성, 나아가 일본적십자사까지도 조총련의 북송공작이 그들로서는 말할 수 없이 귀찮은 존재인 재일교포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라는데 뜻을 같이하고 은밀하게 이를 추진키로 합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일양국의 협상대표자들은 일본정부의 저류에 흐르는 이 같은 움직임을 알지도 못한 채 관계정상화를 위해 조그마한 돌파구라도 열려고 무진 애를 쓰고있었다.
국내정계에서도 한일회담의 조기타결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나름대로의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런 흐름의 하나가 유석 조병옥박사로부터 나와 큰 물의를 야기시켰다.
민주당대표최고위원인 조 의원은 11월 28일 UPI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평화선 문제는 국제재판소에 재소해 해결토록 하자고 제의했다. 이는 일본측의 주장과 가깝고 우리측 입장과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정부의 대일교섭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나는 즉각 『유석선생의 견해는 평화선에 관한 충분한 검토가 없는 발언』이라고 반박하고 『외교문제에 관한 한 초당파적 협조가 요청된다』고 당부하는 회견을 가졌다.
자유당은 12월5일 성명을 통해 『조 의원의 발언에 국민적인 일대 증오를 느낀다』고 지적, 그 발언을 취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정환 외무장관도 6일 회견을 갖고 초당외교를 강조하면서 『국내법화된 것은 국제기구에서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유석은 6일 그 발언은 단순한 개인소신일 뿐이라고 전제하고 『한국입장으로서는 평화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일본으로서는 평화선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영해주권문제가 국제법상으로 미해결 된 오늘에 있어서 평화선문제는 유엔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의 조정을 받기로 하고 잔여문제를 절충해 한일외교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말했다』고 해명했다.
이 문제는 조 박사의 해명으로 일단락 되었지만 대외관계, 특히 첨예한 이해가 걸려 협상 중인 문제에 대해 자국협상입장을 약화시킬지도 모르는 발언은 여야를 초월해 신중한 자제가 요청된다는 교훈을 남겼던 사건으로 생각한다.
반드시 이 교훈의 여파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일본이 59년 초 북송추진방침을 밝혔을 때 「24 파동」으로 경색됐던 여야관계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거당적으로 북송반대운동에 일치 단결했던 것은 대외문제에 관한 초당외교의 한 이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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