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1994년(12)-제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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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비행기 차창을 통해 내려다보이는 제주도는 바다 위에 떠있는 삿갓과 같은 형상이다. 비행기가 차츰 하강함에 따라 K씨는 고향 땅을 밟는 감회에 젖었다.
몇 년 전인가, 고산 국제공항이 화순 근교에 새로 생긴 이후 서울과는 셔틀 (Shuttle) 비행기가 운행되어 훨씬 제주도가 가까워진 기분이다. 복잡한 탑승절차도 없고, 아무 때나 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항 건물을 빠져나와 서귀포 행 리무진 버스에 오르며 그는 제주도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에 본격적인 개발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85년, 정부가 제주도를 「자유지역」으로 설정한 후 부터였다. 당시 국내외의 부동산 업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초기에는 불꽃튀는 투기 붐이 조성되었었다. 그러나 서울의 강남개발이 얼마나 치졸하였던가 깊이 반성한 정부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공영개발에 의해 모든 개발 사업이 추진되었으므로 제주도 개발은 의외로 조용했던 편이었다.
덕분에 근 10년이 지난 지금 화순∼중문∼서귀포를 잇는 연담 자유도시가 탄생하였고, 제주도 일대가 관광 및 무역 중계지로 국제사회에 부상하게 된 것이다.
제주도의 성장에 또한 크게 기여한 것은 물론 88올림픽이었다. 세계의 관광업계가 88 올림픽을 계기로 마치 숨겨져 있던 보물을 찾아낸 듯 「동양의 신비」에 대한 돌풍에 휩쓸린 것이다. 「타고르」가 읊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 는 곧 동양의 신비에 대한 대명사처럼 되었다.
뿐만 아니라 86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찾아든 해빙 무드는 서방 세계와 중공과의 교역량을 크게 높여 제주도는 자연히 대륙과 태평양의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지역 계획이 발표되었을 때 회의에 찬 반응을 보였었다. 외화 몇 푼 벌 수 있다고 하지만 카지노가 들어서고 환락가가 들어서면 제주도가 소위 「텍사스촌」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제주도는 관광지로는 하와이와 비교되며 자유항으로서는 옛날의 홍콩과 비교되고 있다. 반면 홍콩은 영국의 조차기간이 끝나감에 따라 차츰 빛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제주도에서는 연일 국제회의가 열리고 관광객·비즈니스맨들이 드나들어 마치 인종 전시장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K씨는 도시 계획가로, 그러니까 10년 전 당시 제주도 계획에 참여했던 때의 정열과 보람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기억은 제주도 출신인 그에게는 유독 훈장과 같은 것이었다.
K씨가 탄 차는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마침 해가 저물고 있어 멀리 항구시의 화려한 네온등과 부두에 정박한 거대한 선박들이 내려다 보였다.
순간 그는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허전한 기분이 되었다. 돌담초가 대신 호텔과 별장·콘도미니엄이 들어선 제주도, 투박한 사투리보다 매끈매끈한 영어가 제격인 제주도, 산허리를 끼고 돌던 자갈길 대신 고속도로가 뚫린 제주도- 어디를 둘러봐도 옛날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이곳 어디에서 그가 뛰놀고 조개를 잡던 곳이었는지. 그는 쓸쓸한 감상에 젖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디 변한 곳이 이곳뿐인가. 전국의 모습이 달라졌고 그 자신 각종 개발 계획에 참여하여 왔지만 왠지 그는 이곳 고향 땅만은 차라리 옛날 모습대로 두었었으면 좋았었으리라는 안타까움에 젖는 것이다.
이건형 <국토개발연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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