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한진 그룹(하)|전분경영인(2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 거래나 동업은 하지 말라는 옛 말이 있다.
돈 문제로 의절까지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그룹에는 이 말이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조중동회장의 형제와 매부들이 한솥밥을 먹어왔지만 중간에 싸우고 회사를 뛰쳐나간 사람이 없다.
매부인 김형배 한진부회장은 친척이라기보다 조회장의 평생친구인 셈이다.
45년 11월 창업이래 38년간을 동고동락해왔다는 것이 한국기업풍토에서는 얼른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처남 매부가 이처럼 서로를 위하고 합심해서 일을 하는 까닭에 아랫사람들은 조회장만큼이나 김형배 한진부회장을 어려워한다.
김형배씨의 별명은 백두산호랑이. 평생을 자동차와 함께 살아와 자동차운송업무에는 베테랑인데다 머리가 백발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조회장과 함께 월남전쟁터를 누비던 그 기백으로 지금도 한진군단을 지휘하고 있다.
김형배한진부회장과 함께 조 회장을 받쳐주는 양대 지주 중 또 하나는 조중건씨.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감각이 뛰어난데다 대인관계마저 원만해 사내 외에서 인기가 높다. KAL기사고 등 궂은일이라면 형인 조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를 도맡아 처리한다.
50년대에 미국에서 고학으로 건축학d,f 공부한 조중건씨는 59년부터 지금까지 형을 도와 한진그룹을 키우는데 전력투구해왔다.
그러나 「형이하는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같이 일해온 것은 아니다』고 한다. 포용력이 넓은 조회장과의 남달리 깊은 우애 때문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때문에 독립이라는 것은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항시 웃는 얼굴이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앞으로도 형을 도와 열심히 일하다 조카들이 크면 형을 따라 물러나야 하지 않겠느냐』고 웃는다.
조회장과의 이 같은 우애 때문에 한진그룹만은 절대 후계자문제로 잡음이 일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을 한다.
조중건씨 등 조 회장 동생이나 김형배씨 형제들은 조회장 아들, 즉 조카들이 클 때까지만 전문경영인으로서 회사를 맡아 관리를 할뿐이라는 것이다.
2월 주주총회 때 조 회장이 겸하고 있는 대한항공사장자리를 물러난다지만 그룹총수로서 그룹을 총괄하는데는 변함이 없다. 조중건씨가 대한항공사장이 되고 조중식씨가 한일개발사장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후계자로 누구나 알고있는 조량호상무(35·조회장 장남)가 경영수업을 마칠 때까지 시한부라는 얘기다. 즉 조카를 기르기 위해 잠시 회사를 맡을 뿐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5∼10년 후면 자연스럽게 2세로 경영권은 넘어가게 될 것으로 보고있다.
조 회장에게는 조량호상무를 비롯, 조남호(33·한일개발미주구매담당상무)·조수호(29·로스앤젤레스지점차장)·조정호(25·파리지점과장) 씨 등 4형제가 있다.
후계자가 될 조량호상무는 경복고-미 사우드 캘리포니아대를 졸업한 뒤 대한항공에서 미주본부·자재·정비·기계· 인사업무를 두루 거치며 경영수업을 쌓고있다. 아버지와 달리 키가 큰 그는 성격이 온순한데다 재벌2세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만함이 없고 서민적이라 사원들로부터 평이 좋다고 한다. 2월 주총에서 직급의 상향조정도 예상된다.
한편 처음부터 한진그룹에서 사회생활을 시작.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은 한진의 김건배·허기 공동사장이다.
김건배사장은 김형배부회장의 동생인데 45년 창업 때 18살의 어린 나이로 한진에 몸을 담아 최말단에서부터 온갖 잡일을 다하며 일해온 결과 사장까지 된 사람이다.
버스·트럭 담당사장인 그는 지금도 새벽6시면 현장에 나와 자동차상태를 체크한다.
엔진소리만 들어도 자동차상태를 알 정도란다.
허기사장도 58년 22살 때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한진에 입사, 25년만인 지난해 11월 사장이 됐다. 조회장 집안과 인척관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전문경영인다.
한국에 컨테이너업무를 처음 도입했으며 일밖에 몰라 독일평정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문제가 생기면 며칠 걸리더라도 해결될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합리적인 성격에 영어를 잘해 한진의 대외관계를 전담하고있다.
이밖에 사장들은 모두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경영인들이다.
이선기동양화재사장은 동자부장관 등 오랜 관직생활로 한진과 인연이 닿아 83년부터 동양화재를 맡았다. 특히 대인관계가 좋다는 평.
김용각해운사장은 조중건씨와 6·25때 포병통역장교로 근무하면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
경성법전출신으로 경기고 영어선생도 지냈다.
상공부서기관·포철상무·고려원양을 거쳐 74년 한진그룹에 몸을 담았다. 제동흥산도 함께 맡고 있다.
서울대공대·공군출신인 문병찬 한국공항사장은 경인에너지대표·태평개발사장을 거쳐 76년 한일개발부사장으로 그룹에 발을 디뎠고 서진환 한국공항용역사장은 교통부 항공건설사무소장출신으로 79년 그룹에 들어왔다.
상공·내무·교통부장관·관광공사총재·한전사장을 지낸 김일환씨는 73년 한진관광을 맡았고 77년부터는 정석기업도 함께 맡고있다.
이해명 한불종금사장은 외환은행 이사출신으로 원진산업 대표를 거쳐 77년 한불종금을 맡았다. 외국어에 능통하다.
최준식 한일증권사장은 증권업계에만 22년간 근무한 증권업무의 베테랑이다.
국일증권·한보증권 상무를 거쳐 73년 한일증권상무로 그룹에 들어갔다. <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