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베 담화 꼬일까봐? … 왕세자 방한 막은 일본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7면

다음달 12일부터 대구에서 열리는 제7회 세계 물 포럼(WWF)에 나루히토(?仁·55·사진) 왕세자가 불참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복수의 한·일 외교소식통은 9일 “국교 정상화 50년을 맞아 양국 관계 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물 문제에 관심이 많은 나루히토 왕세자를 공식 초청하는 문서를 한국 측이 일 정부에 보냈다”며 “하지만 일 정부는 ‘일정상 힘들다’는 이유로 사실상 거부 의사를 공식 외교 경로를 통해 전해왔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나의 라이프워크(일생을 걸고 관심 기울이는 테마)는 물 문제”(2009년 기자회견)라 말할 정도로 물 전문가다. 2003년 이 포럼의 명예총재를 맡은 이후 교토(2003년 3회 대회), 멕시코(2006년), 터키(2009년) 등에서 열린 대회(3년에 한 번 개최)에 계속 참석해 강연했다. 직전 2012년의 제6회 대회(프랑스 개최)는 일왕이 심장수술을 받은 직후라 비디오 메시지로 대신했다. 왕세자는 2007년부터 유엔의 ‘물과 위생에 관한 자문위원회(UNSGAB)’의 명예총재를 겸하고 있으며 대학(가쿠슈인) 논문 주제도 물과 관련된 것이었다. 영국 옥스퍼드대 유학 시절 당시 연구 주제도 ‘18세기 템스강의 수상교통과 물자유통’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 측에선 양국 정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돌파구로 나루히토 왕세자의 ‘물 포럼’ 참석을 모색해 왔다. 공식 초청장이 전달된 후인 지난해 9월 말에는 유흥수 주일대사가 일 왕실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일왕에게 이 문제를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왕세자는 방한에 강한 의욕을 보였지만 만일의 사태 시 경호문제와 정치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일 정부가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었다”고 말했다. 대외적인 명분은 ‘일정상 이유’였지만 2012년 독도 방문 직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독립운동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했던 발언의 여파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또 오는 8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기존 담화에 있는 ‘침략’ ‘식민지 지배’ 등의 표현을 뺀 ‘아베 담화’를 내려는 참에 왕세자가 방한할 경우 지장을 받을 것이란 판단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