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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1위 힐러리, 검증 몰매도 1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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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사진 중앙포토DB]

미국의 대선 가도에서 부동의 대세론을 유지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검증의 소나기를 맞고 있다. 공화당이 뚜렷한 대표 주자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여론의 관심이 선두 주자에 집중되면서 벌어지는 양상이다. 지난 2월부턴 기부금 논란에 이어 e-메일 파문이 겹치며 쌍끌이 악재를 겪고 있다.

지난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보도로 불거진 e메일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 중이다. 클린턴 전 장관이 2009년 1월∼2013년 2월 4년간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규정을 어기고 정부 e-메일이 아닌 개인 e-메일을 공무에 활용했다는 게 골자다. 워싱턴포스트(WP)는 8일 “개인 e메일을 썼다는 것은 e메일이 민간 회사의 서버를 거친데다 당시 정부 기록으로 보관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안과 기록물 관리 모두에서 문제라는 취지다. 한국에선 별것 아닌 e메일 논란이 커지는 배경엔 e메일을 사신이 아닌 공식 문서로 간주하는 미국 문화도 있다. 워싱턴 내 국제기구의 고위 인사는 “여기선 대외적인 보안 문제 등이 발생하면 무조건 해당인을 방에서 내보낸 뒤 문을 걸어 잠근 채 컴퓨터부터 뒤진다”며 “e메일 등은 보안 측면에서 철저하게 여긴다"고 귀띔했다.

급기야 우군인 민주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민주당 중진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8일 “이제부터 침묵은 클린턴 전 장관에게 상처을 입힌다”며 적극적인 해명을 공개 요구했다. 전날엔 오바마 대통령이 “(언론 보도로) 다른 이들이 알게 됐을 때 나도 알았다”며 백악관 책임 논란을 비켜갔다. 하루 앞선 6일 백악관 브리핑 땐 클린턴 전 장관이 개인 e-메일을 사용한 것을 백악관이 언제 알았는지를 묻는 추궁성 질문이 쏟아져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에 대한 답변은 뒤로 밀렸다.

클린턴 전 장관은 또 장관 재임 시절 ‘클린턴 재단’이 외국 정부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은 게 드러나며 ‘원조 김영란법’에 발목이 잡혔다. WP에 따르면 인권 문제를 놓고 미국에 로비를 했던 알제리 정부는 2010년 클린턴 재단에 50만 달러를 기부했다. 명목은 아이티 지진 피해 복구였다. 클린턴 재단은 클린턴 가족이 운영한다. 이 때문에 로비에 나선 외국 정부의 돈을 현직 장관 가족이 운영하는 재단이 받는 것은 미국 공직 윤리의 대원칙인 ‘이익 충돌의 금지’에 저촉될 수 있다. 이익 충돌의 금지는 공무원이 공직과 충돌하는 사적 이익을 도모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다. 최근 한국 국회가 통과시킨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의 당초 모델에는 이 취지가 포함돼 있었다. 클린턴 전 장관에 쏟아지는 검증 세례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장관 퇴직 후 거액의 강연료를 받고 대학 등지에서 강연을 했던 게 드러나며 ‘전관예우 강연’으로 시끄러웠다.

공화당은 호재를 만났다. 트레디 가우디 공화당 하원의원은 e메일 사용 문제를 놓고 클린턴 전 장관을 하원 특위에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공언했다.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둔 클린턴 전 장관을 의회에 붙잡아 놓겠다는 계산이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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