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계절이 진 창밖엔 바람이 시려 불고
죄업을 진 가슴엔 흰눈이 내려 쌓여
때묻은 일기장마다 손꼽아본 또하루.
뼈굵은 눈시울이 수의(수의)를 붉히우고
지나온 한 점마다 멍이 든 자국이여
새 삶의 눈물을 밟고 고향으로 가는길.
해진 맘 정성 깁는 어머님의 모진 정이
달이 뜬 철창 새로 사랑인 듯 비쳐드네
그 손길 그 주름 얼굴 어제 보고 또 보네.

<대춘부|최일화><인천시 남구 주안5동 31의1 동인아파트 b동309호>>
몸 져 누운 하늘
다리 절어 나앉은 강
대소한 고비 고비
강추위 기승 속에
지금쯤
겨울 나무는
나이테를 감겠지
꽂 진 자리 흰눈 쌔고
새 뜬 자리 바람 차네
지금쯤 꽃과 새는
무얼 하며 겨울 날까
호오흐 언 발 불면서
봄의 꿈을 꾸겠지.

<돌림정|이재천><전북 정주시 시기1동 184의5>>
안정제 드시고야
잠드신 울 어머니
막내란 정나미로
어느 주름 펴오리까
겹사와
늙은 아기가
자장가를 욉니다.

<지게꾼|권영신><서울 중구 신당4동 40의468>>
만사람 꿈을 엮는
아직 고운 새벽인데
오늘이 어제 같아
서리꽃 눈썹 달고
역구내 멈추는 열차
네 손인 양맞는다.

<선후평|현실을 절실하게 표현하기 위해선 상상력 필요|『회향』…독특한 체험을 뛰어난 표현력으로 처리>
우리가 일상으로 대하는 자연풍물이나 인간이 생존하는 모습들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보고 듣는 그대로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술의 세계는 예술가의 상상에 의해서 창조된 세계이므로 현실세계를 보고 듣는 눈과 귀로는 감지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가의 적성을 논할 때 첫째 요건으로 꼽히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현실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수 있는 수단으로 사진을 생각할수 있읍니다만 매일 수없이 찍혀 나오는 사진은 예술작품이 될수 없습니다. 사진이 예술이 되려면 사진작가의 상상적 체험에 의한 창조적 행위가 따라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이 이솝이야기에 나오는 것과 같이 사람의 말을 하는 여우나 「그림」동화에 나오는 백설공주같은 아가씨는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예술가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면 예술가들은 왜 상상력 세계를 방조해야 하는가? 좀 어려운 이야기가 됩니다만 현실을 보다더 절실하게 표현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겉으로 나타난 현실세계는 너무나 평범하고 상식적이고 타성적이어서 그런 현실로써는 현실이 지니고 있는 참다운 모습을 표현할수 없기때문에 예술가는 현실을 비추어주는 거울로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시조에 있어서도 현실세계를 충실하게 묘사하기만 하면 곧 시조가 된다는 생각은 그릇된 인식이라는 것을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회향』은 독특한 체험을 상당한 수준의 표현력으로 처리해 낸 수작이어서 두 수 이내라는 관례를 깨고 세 수 한편을 몽땅 게재합니다. 형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한 개인의 심정인데, 사실일수도 있고 어떤 표현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으로서의 허구일 수도 있겠지요. 어느 편이건간에 희구히나 감동을 맛보게 해줍니다.
『대춘부』도 금주의 수작중의 하나. 뼈대가 좋아 부분적으로 가필을 했으니 비교해 보시오. 허두의 비유에 재치가 번득이고 둘째수의 동시적 소박성 또한 취할만 합니다.
『돌림 정』의 절실한 인정미와 언어 구사는 정인보(정인보)선생의 「자모은」 한수를 읽는 느낌이군요. 격려를 보냅니다. 『지게꾼』은 가벼운 생활의 스케치로서 무난합니다. 장순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