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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번호 없애야 하지만 국보 1호는 바로잡아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감사원이 국보 1호를 숭례문(남대문) 대신 다른 것으로 바꾸자고 제기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문화재위원회가 "당분간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유지하되, 장기적으로 서열로 오해될 수 있는 지정번호는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설사 관리 번호라 하더라도, 일반인은 국보 1호를 가장 소중한 문화재로 여기는 게 사실"이라며 "일제가 조선 문화재 1호로 지정한 것을 해방 후 그대로 계승했기 때문에 일제 잔재 논란도 있는 만큼 더 가치 있는 문화재가 있다면 이 기회에 그것으로 국보 1호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해온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이 기고를 전해왔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

얼마 전 우리 나라 국보체계에 대해 일제잔재니 문화재를 등급별로 결정했다느니 하는 것으로 국보 1호 변경 논란이 있었다. 결국 국보지정문화재위원회는 국보는 등급이 아니라 관리번호 일뿐이라며 당분간 그대로 두고 곧 우리 나라 문화재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해야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국보나 보물에 부여된 번호는 관리번호일 뿐이며, 1962년 문화재 지정에 대해 재검토를 했기 때문에 일제 잔재가 아니라는 것이며 문화재청이 아닌 감사원에서 국보 지정문제를 거론한 것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국보지정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할 점이 있다.

첫째, 우리 국민이 문화재 번호를 관리번호로 인식하고 있느냐이다. 실증법인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을 보면 문화재에 부여한 번호가 단순 관리번호라고 명기한 곳이 없다. 따라서 문화재에 부여한 번호가 단지 관리번호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행 문화재보호법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또한 현재 국보지정문화재위원회는 우리 나라 문화재계의 최고 원로이다. 따라서 문화재보호법이나 문화재 지정 체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분들이 당시에 국보로 지정하고 이후 문제가 발생하자 그대로 두라고 한 꼴이 된다.

둘째, 문화재에 번호를 아직까지 두고 있었던 것이나, 아예 번호를 없애자고 결정한 것에 일면 타당성 있게 보이기는 하지만, 일제의 문화재 지정 체계를 그대로 본받아 국보.보물 하다가, 1950년대 일본이 번호를 없앤 것과 같이 일본을 뒤따라 국보.보물에 번호에 재검토하자고 결정한 것은 결국 우리 나라 문화재 체계가 일본에 비해 55년이나 뒤떨어져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문화재에 부여한 번호는 문화재에 대한 가치등급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의 주장은 시대정신이 없는 책상학문, 페이퍼학문이라는 오명을 받기에 충분하다.

셋째, 일부 신문은 사설과 칼럼을 통해 국보재지정에 대해 반대에 기를 올렸다. 모 일간지는 좌파의 홍위병운운까지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사가 본인에게 문화재관리에 대한 취재를 요청해 올 때 국보나 보물이냐 먼저 따지다가 지방문화재라고 하면 취재를 포기하기 일쑤였다. 과연 우리 나라 언론이 국보 관리번호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나라고 묻고싶다.

필자는 근본적으로 우리 나라의 문화재 지정번호에 대해 이번 기회에 모두 없애야한다고 생각한다. 해당 문화재는 하나하나 그 가치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문화재는 있어야한다고 판단한다

숭례문 자체가 건축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우리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대표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는 것이고 숭례문은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치 와 가토가 한양을 점령하고 입성한 기념비적인 문이라고 해서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의도적으로 당시의 보물1호로 지정한 것이고 해방 후 우리 문화재계는 아무런 대안이나 반성 없이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1962년에 재검토를 했다고 하지만 재검토만 했지 재지정은 하지 않았다. 결국 일제가 정한 그대로 지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현재 중고등학생이나 시민들의 여론을 들어보면 숭레문이 국보1호 인 것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학생?시민들이 더 많다. 즉 숭례문이 국보 1호인 현재가 혼란이다. 국보1호 바로잡기는 혼란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들것이라고 하는데 이번 기회에 국보1호를 바로잡으면서 이 과정들을 시민들의 역사, 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국보1호를 바로 잡음으로 해서 전 국민들의 우리문화나 역사에 대한 자긍심, 자랑스러움으로 불러일으키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의 가치는 교체비용보다 훨씬 많은 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본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사용하고 전 국민이 소유하고 활용하고 있는 우리 언어, 말 그리고 유형이 남아있는 훈민정음 혜래본이 있다. 또 세계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보다 훌륭한 역사적, 문화적, 시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화유산은 없다고 판단한다. 즉 훈민정음 해례본 하나를 지정할 것이 아니라 무형의 우리언어, 말, 그리고 유형으로 남아있는 훈민정음 혜래본,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 어디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유무형을 묶어서 지정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또한 일제 잔재 청산 차원이라는 명분 때문에 바꾸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굴절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라는 면에서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라는 입장에 대해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역사나 문화에 대하여 기록(아카이브)과 기념(메모리얼)은 다르다. 필자 역시 일제 잔재 청산이라 해서 무조건 없애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

따라서 기록으로 남겨 보존할 것과 기념해서 가치를 부여해 보존할 것들은 엄격히 구분해야한다.

필자는 숭례문이 국보1호 이거나 우리 나라 문화재 관리 체계를 잘하고 있다고 기념해야 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과거 잘못된 것은 기록으로 남겨놓으면 되는 것이다. 즉 숭례문이 한 때 국보1호 였다거나 우리 나라 문화재체계가 일제로부터 답습한 것이다 를 기록으로 남겨서 과거의 공과 오에 대해 연구하고 반성해서 남기고 다시는 이런 일을 재현하지 않겠다는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한다.

필자는 소위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관련전문가의 시대정신이 없는 역사인식이야 말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과거 일제로부터 받은 고고학, 미술사학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 감사원은 회계나 행정 감사에 치중해 왔다. 감사원이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는 우리 나라의 문화재의 관리실태에 감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화재전문가와 학계에서 지난 60년 동안 문화재관리를 제대로 못하니까 감사원에서 감사를 하는 것이다. 이번 감사원의 정책감사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현행 문화재 지정체계 중 가짜가 지정된 것도 있을 것이고, 없어진 것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 관련 전문가가 심도 있게 논의하겠지만 이제는 과거와 달리 시민들도 역사의식, 문화의식이 성숙되어 있다.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공청회, 토론회를 열어 여론 수렴을 해야 할 것이다. 이제 문화재에 대한 판단도 소위 전문가들만의 몫은 아니라는 것이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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