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나의 동경 …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

중앙일보

입력

만약 모스크바의 크렘린 광장 같은 데서 누군가가 “이 도시에 사는 러시아 피아니스트들 다 모여!”라고 외치고 정말 그들이 일시에 다 모여든다면 아마 일개 사단 정도는 모여들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해본 일이 있다. 다른 악기들도 그렇지만 피아노는 특히 숫자가 많다.

자꾸만 새 얼굴이 나타난다. 대체로 정상급 실력자들이다. 그 가운데는 당연히 개성을 뽐내는 괴물도 마녀도 존재한다. 내가 러시아에 갖는 두가지 수수께끼는 스탈린 이래 끝없이 이어지는 암살로 점철되는 정치적 혼돈과 헤아리기조차 힘든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의 숫자이다. 어쩌면 두현상은 서로 보완관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폭력과 인간정신의 가장 숭고한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마리아 유디나(Maria Yudina, 1899~1970), 전쟁시기에 주로 활동했고 지금은 전설로 남은 이 여성 피아니스트는 아마 내가 건반연주를 통해 경험한 괴짜 중에서도 가장 걸출하고 특이한 괴짜, 앞으로도 좀처럼 만나기 힘든 존재가 아닐까 생각된다. 거의 혁명에 가까운 연주성향, 그에 따르는 몇가지 삽화로 미뤄볼 때 그에게는 ‘건반 위의 로자(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호칭을 붙여주고 싶다.

전설이라고 하나, 마리아 유디나의 이름은 스탈린과 관련된 삽화들로만 주로 알려져 있을 뿐 그 연주에 관해서는 별로 일반에게 알려진 것이 없다. 스탈린 관련 삽화들은 공식 확인된 것도 있고 부풀린 것 같은 소문도 있다. 스탈린은 밤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을 듣고 그 연주 기록(녹음된 것)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생방송이었고 연주자 마리아 유디나는 그때까지 녹음 경력이 없으므로 관리들은 밤중에 부랴부랴 약식 협주단을 만들었고 유디나를 불러다가 간단한 한 장 짜리 녹음 음반을 만들어 지도자 동지에게 바친다. 이것이 스탈린과 유디나의 삽화의 시작이다.

갖가지 의혹을 낳은 스탈린의 죽음을 다룬 다큐를 보면 스탈린의 죽음이 발견된 다차의 거실에 처칠이 선물했다는 레코드 플레이어가 보인다. 스탈린은 마지막 시간에도 마리아 유디나가 연주한 모차르트 협주곡 23번을 들었다. 여기까지는 사실로 믿어진다. 일부 기록에는 시오니스트들(베리아가 고용한 유태계 의료진)이 독살을 위해 거실에 진입할 때 음반이 돌고 있었다는 얘기도 보이는데 확증은 없다. 스탈린이 연주를 듣고 눈물 흘렸다는 기록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이것 역시 확증은 없다.

모차르트의 모든 곡이 표면은 밝아도 이면에는 슬픔의 개울이 흐르는 걸 알 수 있다. 23번 협주곡의 아다지오가 특히 그렇다. 스탈린은 이 아다지오에서 자기의 곡절 많은 삶을 위안 받았을까? 유디나는 1악장에서 폭발적 속도감을 보이고 2악장 아다지오는 완만한 흐느낌처럼 유난히 느리게 진행한다. 다른 연주들과는 확실한 차별성을 드러내는 그의 연주를 특히 선호한 스탈린의 탁월한 심미적 감수성에 탄복해야 하는 것인지 여기서 생각이 조금 복잡해진다.

마리아 유디나의 연주는 전례가 없는 강한 개성, 이지적인 해석으로 어느 작품이건 다른 연주들과 확실하게 구별된다. 그런데 결과물이 신통치 않다면, 그리고 관객에게 특별한 기쁨을 선사하지 않는다면 그 개성은 쓸모 없는 것이 된다. 마리아 유디나는 모든 작품을 자기 시각으로 통찰한 뒤 그것을 재조립한다. 젊은 시절 철학공부에 몰두한 경험, 유태교에서 정교로 개종한 뒤 더욱 두터워진 종교적 신념, 타고난 이지적 자세 등이 작품해석의 배경으로 작용한다. 그는 여성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강렬한 팔목의 힘도 갖추고 있다.

“유디나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성서주석서로 간주하고 연주도 흡사 설교하듯 했다.” 음악원 동급생이자 절친인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담이다. “유디나가 치는 4성부의 푸가는 각각의 성부가 모두 다른 음색을 갖고 있어 놀란 적도 있다.“ 역시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담이다. 유디나는 빠스테르나크와 단순 친교 이상의 교감을 나눈 사이로 『닥터 지바고』의 초고를 유디나의 아파트에서 처음 낭독했다는 기록이 있고 연주회 앙코르 무대에서 금서인 빠스테르나크의 시를 낭독하고 음악원 교직에서 짤렸다는 일화도 있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성서로 간주했다면 그의 연주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빠른 진행으로 소리는 다소 거칠지만 효과적인 폴리포니 배합과 발군의 리듬감으로 숨이 막힐 정도로 화려한 교향악처럼 들린다. 글랜 굴드의 충격보다 더 세고 더 신선한 충격을 유디나 연주에서 나는 받았다. 유디나는 페달을 줄이고 음을 딱딱 끊어 악구를 명확하게 나타내는데 이 수법이 핵심을 빨리 드러내고 작품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명연으로 알려진 호로비츠 연주의 모차르트 협주곡 23번과 유디나 연주를 비교하면 그녀 연주 특성의 일단을 알 수 있다. 유디나는 1악장에서 40초, 3악장에서 1분 20초를 빠른 속도로 단축해버린다. 아다지오 악장에서는 반대로 2분의 시간을 더 끈다. 전체로는 균형을 맞춘 셈인데 그가 작품을 재조립한다고 말한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이런 시간 배분 탓이다. 그는 오래 머물며 생각해야 하는 부분과 가능하면 간결하게 처리해야 하는 부분을 극명하게 분리하고 있다.

베토벤 소나타나 모차르트 소나타에서도 같은 현상은 반복되고 결과는 전에 맛보지 못한 특이하고 신선한 미적 감흥으로 전달된다. 마리아 유디나, 음악의 극점을 탐험하는 참으로 매력적인 피아니스트!

송영 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