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6)제80화 한일회담(1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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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는 이대통령으로부터 애정에 없던「야쓰기」특사의 기자회견을 주선하라는 지시를 받고 난감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엄명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지시에 당혹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에서는「야쓰기」특사의 방한을「사죄사절」이라고 비판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었다. 더우기 나흘 후로 다가선 일본 총선거를 앞둔 상황에서「야쓰기」 특사가 과연「기시」수상에게 불리한 환경을 조성할지도 모를 회견에 선뜻 응하려할지도 지극히 의심스러웠다.
그것도 이대통령이「야쓰기」씨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하고자 하는 내용은 우리로서야 원수지만 일본에서는 원훈으로 떠받쳐지고 있는「이또·히로부미」(이등박문) 를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유태하공사와 나는 이일을 성사시키지 않으면 안됐다. 경무대를 물러 나와 우도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야쓰기」씨를 이날 밤 요정에 초대해 회견설득공작을 벌였다.
청운각에서 임철광씨.장경근씨, 유공사및 나는「야쓰기」특사와 한일양국현안은 물론 아시아 자유진영의 결속방안 등에 관해 허물없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야쓰기」씨는 술이 거나해지자 한일친선의 확립은 아시아자유진영의 결속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며 따라서 자신은 한일유대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노라고 공언했다.
그는 고등교육은 받지 못했으나 일본정계 보수진영의 막후실력자로 성장하기 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답게 그 변설은 참으로 도도했다. 현하지변이란 옛말 그대로였다.
흥이 무르녹을 즈음 나는 슬며시 본론을 꺼냈다.
「「야쓰기」선생. 이대통령께서는 오늘 선생을 만나보고 대단한 만즉을 표했소. 잘 아시다시피 이대통령은 본인이라면 주무시다가도 벌떡 일어나 타기하실 만큼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계시는게 사실이오. 그러나 오늘 선생과 만나고는 나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소. 일본인들의 한 20%정도만 선생이나「기시」수상 같은 마음을 가졌다면 한일현안은 벌써 해결되어 과거를 용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을게야.> 그러시면서 대통령께서는 선생의 의중을 우리 국민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한국에 팽배해 있는 반일국민감정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는게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읍니다.』
나는 술잔을 돌리지 않는 일본주법을 짐짓 모른체 하고 잔을 그에게 돌리며 그의 표정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는 상당히 곤혹스런 기미가 역력했다.「야쓰기」씨는『사실은 무책임하게 말했는데 그것을 기자들에게 얘기해서「기시」수상에게 정치적으로 좋지 못한 영향을 줄지 모르고 또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말려들어 무슨 엉뚱한 말을 해서 오히려 새로운 불씨를 일으킬지도 모르니 하루쯤 여유를 두고 생각해 보는게 좋겠다』라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동의했다. 21일 이한에 앞서 조정환외무장관을 예방하고 나은 직후 외무부회의실에서 회견을 가졌다. 나는 그의 회견이 외신에도 취급되어야 하므로 미리 성명문안을 만들어주면 영역해 주겠다고 제의했고 그도 순순히 따랐다.
「야쓰기」특사는 성명을 통해『「시시」수상은 과거 일본군국주의자들이 한국에 대해 범했던 과오를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제,『「기시」수상은 한일양국관계의 개선을 엮해 진정하게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기시」수상은「이또·히로부미」와 우연히도 동향인인 까닭으로 그의 선배인「이또」가 지난날에 저지른 과오를 씻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고 일제의 통치를 반성하고『본인은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이시고 반공세자의 영도자이신 이대통령을 알현한 것 일본인이었다는 것을 명예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통령이 기대했던 대로. 그리고 일본 여론이 비판했던 대로「야쓰기」특사의 방한성격이「사죄사절」이 된 것이다.
「야쓰기」씨는 성명을 읽고 난후 기자들과 1문1답을 했는데『귀하의 방문이「사죄사절」이라고 일본신문들이 보도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본인이 일본신문보도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뱃심 있게 대답했다.
이날의 회견에 대해 이대통령이 대만족을 표시했던 것은 물론이다. <계속> 김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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