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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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불쾌할 정도로 행동이나 말이 흉하다는 뜻을 나타내는 형용사가「흉업다」니「숭업다」아닌「흉헙다」면 또 얼마나 당황할까?
표준어란 공통어이며, 이것은 이상적이고, 규범적인 언어를 이른다. 그런데, 우리의「센개」나「흉헙다」는 이미 공통어의 속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그리고 이상적이요, 규범적인 언어라 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표준어는 1936년 조선어학회에서 사정한 것이 고작이다. 따라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10년이 거의 다섯번이나 다가 오려하고 있으니 사정된 표준어와 오늘날의 언어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다. 1936년에 사정된 어휘는 고작 9천5백47어에 불과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낱말이 사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기에 오늘날 일반 언중의 언어는 말할것더 없고, 혼란을 빚고있는 실정이다. 손목에 차는 작은 시계를 사전에 따라「손목시계」「팔목시개」「말뚝시계」라 표제어를 달리 내건 것은 이의 단적인 예이다.
과연 표준어가 이렇게 언어현실과 동떨어지고, 규범도 없이 혼란이 빚어져 좋은 것일까? 언어는 사고 의 도구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결속시키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근대 국가는 국민통합을 위해 국어의 통일정책을 폈다. 따라서 원만한 사고, 국민총화를 이룩하기 의해서는 언어의 통일, 표준어의 확립이 무엇보다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찌기 조선어학회의 사정 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번도 표준어를 사정, 공포해 본적이 없다. 그것도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고서도 문화민족이요, 선진조국을 외칠 수 있는 것인가? 하루 빨리 표준어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재사정, 통일되어야 하겠다. 그래야「동방의 등불」은 제조명 될 것이다.
표준어의 재사정은 졸속주의를 피할 일이다. 그것은 또 다른 화근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별어 아닌 구조와 체계 속에 사정되어야 할 것이다. 예외란 언어의 통일을 저해하고 혼란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10년후, 20년후 우리의 다음 세대상 표준어의 혼란에 시달리지 않게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박갑수(서울대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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