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주도 3년 「표의 심판」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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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5일로 민정당은 창당 4년째를 맞는다. 12대 총선거를 눈앞의 문제로 두고 이제 민정당은 지난 3년간의 업적과 기반을 냉정히 평가받아야할 시점에 서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열과 새행착오를 변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간의 잘잘못을 모두 드러내 놓고 표의 심판을 기다리는 입장이다. 3년 전 구 정치의 청산과 이른바 새 시대 새 정치를 내걸고 출범하면서 국민들에 제시한 약속과 비전이 가연 현실적인 지지기반으로 자리를 잡은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로부터의 애정과 신뢰획득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는지 두고볼 일이다. 비록 걸어온 길이 탄탄대로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민정당은 이제 정국주도 정당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고 있다.
우선 원내에서의 절대안정세(의석의 9분의5), 잘 훈련된 1백만 정예당원(전체 유권자의 5%), 전체 정치자금의 90%를 쓰는 살림 등은 민정당의 성장과 당세를 단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외형상의 양적 팽창 못지 않게 정국 운영에 차지하는 민정당의 비중은 과거 어느 집권여당에서 볼 수 없었던 몇 가지 새로운 면모를 창출해 냈다.
첫째 민정당은 과거 행정주도의 국정운영을 정당주도로 바꾸는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국무총리와 일부 장·차관을 당에서 배출하고 정부로부터 대소의 정책을 입안단계에서부터 협의를 받고 있으며 각 부처가 민정당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명제에 브레이크를 건 것을 비롯, 민정당이 정부의 정책을 견제하고 방향을 바꾸도록 한 예는 얼마든지 꼽을 수 있으며 이런 사례들을 바탕으로 민정당은 당 책임론을 고창 해 왔다.
또 민정당은 선거 때만 반짝 위세를 떨치다가 선거가 끝나면 정부의 들러리나 대여구실로 전락했던 과거의 여당 상을 청산하는데 역점을 두어왔다.
이를 위해 연중 내내 1백만 당원을 교육시켜 공 조직화하고 당의 자전자활을 추구해 당원이 내는 당비가 당 전체예산의 59%를 차지하게 됐다.
국회에서의 극한대립과 흑백논쟁이 퇴조하고 여야만장일치의 예산안 통과(82년) 정당대표간의 잦은 회동, 몇몇 야당 제출법안의 통과 등을 놓고 민정당은 대화와 화합의 정치가 정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긍정적인 축적에도 불구, 민정당의 실상과 그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본질을 좀더 냉정히 파고들면 적지 않은 문제점과 과제를 발견하게 된다.
우선 지난 3년간 민정당이 최우선의 가치로 추구해온 개혁의지의 이상과 현실을 대조해볼 필요가 있다. 당초 내건 개혁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이었느냐는 것은 차지하고 개혁의 노력보다는 너무 쉽게 현실타협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민정당의 당 이념들 중 정의·복지는 민정당이 보수의 선을 넘어 중도노선까지를 포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는데 과연 민정당이 보수의 각을 깼는지는 의문이다.
현실의 제약과 애로 때문에 개혁의 이상을 도저히 실현할 수 없다면 개혁을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수정된 실천계획을 제시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3년 전 개혁의 심벌로 내걸었던 정부기구 축소를 납득할 만한 명분 없이 뒤엎는 결정을 해놓고 『적당히 매를 맞고 넘어가자』는 식으로 나온다면 개혁이전에 정부·여당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변칙이 뚜렷한 해명 없이 자행되는 풍토는 민정당의 당내 민주주의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통령이 총재로 있고 국정에 책임을 져야하는 여당에서 규율을 무시하거나 좌충우돌의 야당 식 토론이 있어야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다만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이상으로 폐쇄적이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한 토론과정이 생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출범 때나 지금이나 대개 핵심간부들간에 당의 의사가 결정, 운영되는 것이 민정당의 특징이라면 여당의 경직성을 근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국회를 통한 대화정치에 있어서도 민정당이 제시한 기준과 평가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민정당은 지금까지 정치의 질을 완내일변도에 맞춰 주로 대야 관계로서 계량해온 감이 있다.
그러나 창당 콤플렉스를 떨치지 못하는 야당의 기가 꺾이고, 「절대다수」를 배경으로 국회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정치적인 과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동참」「총화」의 명분 앞에 쉽게 물러서고 때로는 「무능」을 노출하는 야당에 자신의 비판을 위탁하고 싶지 않은 국민계층은 누가 설득할 것인 가도 생각해야 한다.
아울러 민정당이 집권과정에서 만들어낸 다당제의 지속여부 또는 활성화문제도 적지 않은 부담이자 해결해야할 과제다.
민정당은 이제 그 동안 강조해온 단임 정신과 공인의식을 공천과 선거를 통해 구체화해야하는 큰일을 남겨놓고 있다.
단임 정신이란 어느 선까지 일회성과 직결되는 것일까. 애써 이룩한 공 조직을 온존시키면서 탈락자를 납득시키고 신참 자와 연결시키는 것은 과연 순조로울 것이다.
다음 공천과 선거는 민정당과 제5공화국정부에 리트머스시험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선거에서 여당이 빠지기 쉬운 유혹을 얼마나 자제하면서 공명선거를 실시할 것인지, 안고있는 문제에 대한 자기갱신의 능력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등이 공천과 선거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한 간부의 말처럼 민정당은 지난 선거에서 상환능력을 따지지 않고 선뜻 돈(표)을 빌려준 채권자(국민)들에게 이제는 현품에 대한 가격판정을 받아야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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