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금리수준은 실질이득 보장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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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리와 예금>이자란 돈의 값이다. 상품마다 값에 따라 사고 파는 거래가 이루어지듯이 돈을 빌고 빌려줄 때 매겨지는 값이 곧 이자다. 돈이라는 것이 널리 통용되기 전에도 이자는 있었다. 가난한 백성이 나라로부터 춘궁기에 빌은 곡식을 가을 추수에 갚을 때도 원금과 이자를 쳐서 갚아야했다. 다만 이자가 돈 대신 현물이었다. 지금도 일부농촌에 남아있는 「장리쌀」이 그것이다.
돈의 값도 여느 상품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게 원칙이다. 돈이 흔하면 이자율이 내리고, 돈은 적은데 쓸 사람이 많으면 이자율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이처럼 돈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금리가 저절로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금리의 자율화」다. 미국을 비롯한 몇몇 선진국이나 국제금융시장에서처럼 경제사정에 따라서 수시로 금리가 올랐다 내렸다하는 것이 그러한 예다.
돈의 값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그 내용과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참고 남한테 빌려주는 것인 만큼 「얼마동안」이나 빌려주느냐는 기간을 따져야하고 빌려준 돈을 떼이지 않도록 상대방의 「신용상태」도 감안해야 한다.
장기예금 금리가 단기예금보다 높은가하면 은행보다 신용금고 금리가, 신용금고보다는 사채금리가 더 높은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특히 중요한 것은 금리와 물가와의 관계다. 물가가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이나 쓰려는 사람에 큰 영향을 주어 그것이 곧 바로 금리의 변동을 나타낸다.
옛날처럼 이자도 현물로 받는 사회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모든 경제거래가 돈을 기준으로 움직일 때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돈의 가치가 떨어져버리면 이자를 많이 받아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서 보통 말하는 명목금리와 거기서 물가 오른 것을 뺀 실질금리를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다.
만일 명목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낮다면 예금자는 앉아서 손해를 보는 것이요, 은행돈 빌려쓰는 기업 쪽으로는 그 만큼 인플레이득을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금리수준이란 최소한 실질금리를 보장하는 선을 말한다. 그러나 이 실질금리라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장래의 실질금리를 말하는 것이다.
1년 짜리 정기예금을 들려고 할 경우 지금 당장의 물가보다는 자기가 돈을 찾아 쓸 1년 후에 가서 물가가 어떻게 될지를 따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재물가보다는 장차의 기대물가가 금리결정이나 예금자의 태도결정에 더 중요한 것이다. 어쨌든 우리 나라의 금리정책은 이 같은 원칙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선 정부가 금리결정을 도맡아 왔다. 구조적으로 돈은 적은데 워낙 쓰려는 쪽이 많으니 독점상품에 대한 가격통제처럼 돈의 값인 금리도 정부가 결정해줄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서다.
또 수출증대가 급하다는 이유로 수출업체들에는 대폭 싼값으로 돈을 빌려줬고, 중화학공업육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별도의 주머니를 만들어 우선적으로 장기융자를 해줬었다. 소위 정책금융이라는 것이다. 재작년 6.28조치 때는 기업들이 빚 부담이 너무 심하다는 판단에 따라 한꺼번에 4%나 낮춰줬다.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재작년 이후 물가가 안정세를 보여 실질금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실질금리로만 본다면 크게 늘어나야 할 예금도 계속 신통치 않다.
이론적으로는 실질금리가 높을지 모르나 막상 저축을 해야할 사람들은 별로 높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값 등이 너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부가 금리를 마음대로 결정한다고 해도 워낙 수요·공급의 차이가 심하면 어쩔 수 없이 암시장이 그 공백을 메우게 마련이다. 사채시장이 그것이다.
더욱이 돈줄을 죄는 긴축을 계속하면서 저금리를 유지하려면 이런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물건이 달려서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다투어 사려는 판인데 고시가격으로 값을 묶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질금리의 또 다른 함정은 부동산이다. 실질금리가 아무리 보장된다 해도 부동산처럼 은행예금보다 훨씬 높은 이익을 보장하는 투자대상이 있는 한 예금하고 싶은 생각이 날리 없다.
물론 꼭 금리를 보고 예금하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 예금고 2조원을 돌파했다는 주택은행의 경우 그 은행만 유독 높은 이자를 주는 것은 아니잖은가. 금리와는 별개로「내 집 마련」을 위해서는 웬만큼 무리를 해서라도 저축을 하려하는 우리사회 특유의 저축형태도 감안해야한다.
한편 예금자가 실제로 손에 거머쥐는 금리를 실효금리라고 한다. 명목금리는 같다해도 각종 세금이 붙고 예금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이 같은 점을 모두 가감한 것이다.
예컨대 1백만 원을 정기예금 했을 경우 명목이자로는 년8만 원을 받으나 이중 이자소득세(8천 원) 주민세(6백원) 방위세(8백원) 교육세(4천 원) 등 모두 1만3천4백 원의 세금을 떼고 나면 실효이자는 6만6천6백 원밖에 안 된다.
또 정부가 결정하는 금리라고 해서 일반금융기관금리를 공금리라고 부르는가 하면, 사채이자나 비교적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채권시장 수익률 등을 실세금리라고 구분해서 말한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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