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띠해 우리집 소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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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웃에서 놀러 온 헌이 엄마, 신애 엄마가 각기 자기들의 새해 소망을 늘어놓았다.
현이 엄마는 남편이 이젠 오랜 선원생활을 그만두고 집에서 세식구가 오붓이 살고 싶은것이 소망이라 했고, 신애 엄마는 3년 만기적금을 타면 어디 적당한 자리에 가게를 얻어 참한 양품점 하나를 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두사람의 얘기를 듣고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 형편을 너무나 잘아는 그녀들 앞에 새사 또 전세방 타령을 늘어놓기가 왠지 쑥스러웠다.
그래서 잠시 생각끝에 이런 말을 했다.
『올해는 쥐띠 핸데, 쥐가 어디 제집이 있던가요? 여기저기 쫓겨다니다 숨는곳이 집이죠. 어쩌다 볕이라도 들라치면 새끼 줄줄이 거느리고 돌아다니는걸 못 보았소? 우린 올해 쥐를 생각해서도 집마련 생각은 아예 포기할 작정이라오.』
그녀들은 내말을 듣고 까르르 웃었다. 집 마련은커녕 반반한 전세방 하나도 얻지 못하는 주제에 그런 허튼 농담까지 퍼뜨리는것이 더 우스워서 그런 모양이었다.
하기야 우린들 왜 내 집에 대한 선망과 집념이 없을까마는, 그것은 먼훗날의 꿈이고 우선은 이 월세방 신세에서 벗어나 반반한 전세방으로 발돋움하는것이 온당한 순서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전세방의 소원마저 쉬 이루어질것 같지가 않아 더 기가 찰일이다.
그야 어쨌든 어젯밤 늦게 직장에서 망년회겸 신년회를 했다는 남편이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돌아와서 불쑥 내뱉는 한마디를 듣고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올해도 쥐같이 쫓겨가며 살아야지, 별수있어? 그러다보면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을테지!」
어머, 어쩌면 저이도 나와 같이 그런말을 할까. 내일 이웃들을 만나면 또 한번 까르르 웃겨나볼까…. <부산시동래구연산6동 1876 11통5반 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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