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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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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 아침은 누구나 시인이 된다. 깨끗한 마음, 깨끗한 소망, 깨끗한 감흥으로 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서양엔 「뉴 이어즈 레절루션」이라는 풍습이 있다. 글자 그대로 「신년의 결의」를 다짐하는 놀이(?)다.
가정에서 가족들은 저마다 재담을 곁들여 자신의 새해 포부를 발표한다. 물론 과자와 차 (다)를 나누는, 이를테면 「가족 신년회」다.
그러나 원일 전야, 12월31일 자정은 꽤나 시끄럽다. 땡 하는 시계소리와 함께 소리를 낼 수 있는 모든 장치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른다.
교회의 종이 울리고, 자동차는 경적을 누르고, 사람들은 함성을 지른다. 자정무렵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서로 포옹하고 악수를 나눈다.
영 시인 「A·테니슨」의 시가 생각난다.
-종을 울려 낡은 것을 쫓아버리고 새 것을 맞아라/저 눈 너머로 행복의 종을 울려라/해는 가고 있다. 가게 하라/종소리에 잘못을 실려보내고 옳은 것을 맞아들여라-.
우리 선비들의 새해 맞이는 그렇게 요란하지 않았다. 역시 경건하고 침착하다. 시조를 읊어보아도 그런 심정이다.
-창밖에 동자와서 오늘이 새해라 커늘/동창을 열쳐보니 예 돋던 해 도닫다/아희야, 만고한 해니 후천에 와 일러라 (주의식·조선 왕조 때 가인).
새 하늘이 열려도 은인자중(헌인자중), 수다를 떨지 않는다.「설날」의 유례를 보아도 그렇다. 즐겁고 기뻐해야 세수를「신일(신일)」이라고 했다고 「신」은 근신과 비상의 뜻이다.
육당은 「설」을 「살금살금 걷는다」「몸을 사리다」에서 비롯된 말로 해석했다. 일설에는 신라21대 소지왕(소지왕)이 새해아침 거동을 나섰다가 새와 쥐와 돼지의 지시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얘기도 있다.
그 뒤로 새해 첫날은 「백사를 금기(금기) 했다」는 것이다.
글쎄, 몸을 사리고 사는 것에 이골이 난 오늘의 사람들이 새해 아침마저 기를 못편다면 너무 가혹하다. 「진일」이 고사는 옛 일에 그쳐야 마땅하다.
역년으로 올해, 1984년은 갑자년이다. 간지로 치면 첫 번째 시작하는 해다.
「시작」은 좋은 일이다. 거기엔 마음익 설렘과 기대가 있고, 몸의 분주함이 따른다. 그 결의 또한 단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라 천년의 융성을 연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연대도 갑자년 이었다. 기원전57년. 그는 백성들에게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했다. 민생안정과 산업발전을 도모한 것이다.
그 무렵 국경에 사는 사람들이 문을 잠그지 않고 지내며,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했다는 고사는 바로 그런 선정의 덕이었다.
올해 갑자년을 맞으며 우리 주위의 일들도 새로 시작하는 의욕과 활기와 신선감으로 충만하기를 기원한다. 우리의 노력과 결의가 있으면 기원에만 그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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