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CEO 하라고? … 절레절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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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압박은 심해지고 사생활도 없어 시켜줘도 CEO 자리는 맡고 싶지 않다."(전 세계 비즈니스 리더의 54%)

기업인들에게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줄 '최고의 자리'로 여겨져 온 CEO 자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CEO를 뽑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반면 뽑히는 입장에서도 CEO 자리는 과거에 비해 내키지 않는 자리가 되고 있다. CEO 기피현상마저 나타난다. 회계 부정 사태를 거치면서 잘못 오르면 화를 부를 수도 있는 '가시 돋친 장미'가 바로 CEO 자리라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 최적의 CEO 인선, 기업에 큰 부담거리=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세계적 기업들이 CEO 인선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태를 자세히 소개했다. 능력이 부족한 인물을 사전에 검증하지 못했거나, 유능한 인물이라도 회계 부정이나 개인적 스캔들이 속속 드러나는 사례가 많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이에 따르면 P&G.제록스와 다우 케미컬, 루슨트 테크놀로지 등의 경우 신임 CEO가 중도에 낙마하면서 전임자가 다시 CEO 자리를 맡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런 사태가 생긴 원인은 기업 이사회가 사전에 충분히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인 머서 델타의 데이비드 내들러 회장은 "상당수 기업은 여전히 CEO 선정 절차가 갑작스럽게 이뤄진다"면서 "충분한 사전 준비가 없으면 잘못되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런 실수가 되풀이될 경우 기업의 이미지 추락 등 엄청난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세계적 복사기 제조업체 제록스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제록스는 최근 몇 년간 CEO 인선 문제로 갈팡질팡하면서 전직 CEO 두 명이 한꺼번에 소송 사태에 휘말리는 등 곤욕을 치렀다.

◆ 기업인들 'CEO 기피 현상' 심화=기업인들에게도 CEO 자리는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못 된다.

신입 사원에겐 '샐러리맨의 신화'가 있겠지만 CEO 자리에 가까이 있는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인사들의 CEO직 기피 경향이 강했다. 최근 세계적 PR 전문회사인 버슨 마스텔러는 65개국 685명의 기업 임원과 금융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근거로 "전 세계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인사 중 54%가 CEO직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일과 개인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선진국일수록 이런 현상은 뚜렷했다. 북미와 유럽에서 응답자의 64%와 60%가 "CEO직을 제안받을 경우 거부할 것"이라고 답했고 아태지역도 절반(51%)을 넘었다. 응답자의 64%는"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CEO직을 맡기 싫다"고 했다. 버슨 마스텔러의 레슬리 게인즈 로스 선임연구원은 "CEO 자리는 촉박한 시간, 회계 부정 등 예상할 수 없는 위험 등으로 어려운 자리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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