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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담배꽁초 남긴 좀도둑 … "장백산, 꼭 잡고 말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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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장백산’…. 우리는 그를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서울 광진경찰서 강력4팀이 그를 쫓기 시작한 건 2013년 여름부터였다. 그해 관내에서 절도 신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훔쳐간 물건이 없어 정식으로 사건 등록은 되지 않았다. 현장에는 피우다 만 중국산 담배꽁초 한 개비가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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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당했어. 그 꽁초…. 이번에도 장백산이야.” 현장 감식을 다녀온 과학수사팀 동료들이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저으며 들어왔다. 장백산은 그가 2006년부터 100여 차례 범행의 현장에 남겨온 중국산 담배의 이름. 그의 별칭이 됐다. 서울 구로·관악·금천·광진, 경기도 안양…. 곳곳에서 향을 피운 것 같은 담배꽁초만 남겨둔 채 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꽁초에는 DNA가 제법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DNA는 범죄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전과가 없어서였다. 장백산은 어느새 단일 사건에서 가장 많은 DNA를 남긴 사례가 됐다.

 “장백산…. 그놈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구먼.” 서울과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 여러 경찰서 강력팀에서 경쟁적으로 그를 쫓았다. 장백산은 도둑질하러 간 집에서 달걀을 부쳐 먹거나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복숭아를 깎아먹은 흔적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소재를 파악할 결정적인 단서는 없었다.

 그는 반지하에 사는 영세민들을 주로 노렸다. 폐쇄회로TV(CCTV) 같은 방범시설이 부족한 곳을 골랐다. 피해액은 최대 수백만원대에 불과했지만, 빈곤에 허덕이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컸다. 지난해 6월엔 경기도 성남 태평동에서 23세 여대생이 가을 학기 등록금으로 모아놓은 370만원을 몽땅 훔쳐내기도 했다.

 장백산은 딱 한 차례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2011년 서울 성동구 용답동의 지하 셋방에서 골뱅이 캔 1만원어치와 통조림 햄 2000원어치, 세제와 섬유유연제, 현금 5000원을 챙겨 나오다 피해자와 마주쳤다고 한다. 피해자는 “그가 다리를 저는 것 같다”고 했다. 몽타주도 만들었으나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2014년 광진경찰서로 옮겨온 뒤 장백산을 쫓기 시작했다. 10년째 수도권을 휘젓고 다니는 ‘공공의 적’. 출근 후 내 첫 일과는 과학수사팀이 작성해둔 현장임장일지(SCAS)를 뒤지는 것이었다. 장백산이 저지른 새로운 사건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장백산이 뜨면 현장으로 날아간다’는 게 첫째 근무 원칙이 됐다.

 “봉규야. 장백산이 나타났다!”

 지난달 12일 밤 10시 넘어 함께 심야근무를 하던 황태환 형사가 나를 다급히 불렀다. 현장은 서울 금천구 독산동. 장백산은 그날 현금 65만원과 담배 12보루를 훔쳐갔다. 예상대로 현장에 CCTV는 없었다.

 “제발 나와라….” 근처에 주차된 i30 차량 블랙박스를 갖고 경찰서로 돌아와 영상 이틀치를 샅샅이 뒤졌다. 12시간쯤 지났을까. 허름한 옷에 올리브색 모자를 쓴 50대 남성이 보였다. 손에는 훔친 담배를 담은 듯 각이 진 검은색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다. 4년 전 피해자 진술대로 다리를 저는 모습까지….

 “장, 장…. 장백산이다!”

 그때부터 2주간 우리 팀은 주변 CCTV 300개를 모조리 뒤졌다. 사건 당일 장백산은 125cc짜리 오토바이를 타고 독산동·신림동을 거쳐 마천동 일대로 갔다. 송파구 문정동의 공원 근처에서 흔적이 끊겼다. 사건 발생지에서 35㎞ 거리. 주거지가 그곳 어딘가가 분명했다. 동네를 탐문하다 오토바이를 찾았다.

 “선배님, 장백산 찾았습니다! 문정동으로 다 모이시죠.” 23일 정오쯤 거주지로부터 70m쯤 떨어진 곳에서 잠복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장백산이 나타났다. 오토바이를 타려는 그를 덮쳐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수갑을 채웠다. 장백산은 알아듣기 힘든 말을 중얼거렸다. 손짓으로 강하게 저항했다.

 장백산의 실명은 전○○씨. 올해 52세로 청각 장애 2급 장애인이었다. 그 손짓은 장백산의 언어, 수화(手話)였다. 수화 통역을 동원해 13시간 조사 끝에 조서를 작성했다. 그는 2006년부터 10년째 108회에 걸쳐 1억2000만원어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구속됐다.

 조사 도중 수화 통역사를 통해 그에게 물었다. “현장마다 담배꽁초는 왜 하나씩 꼭 남기신 거예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절도든, 강도든, 살인이든 범인들이 현장에 특정 흔적을 남기는 경우는 종종 있다. 특정 표식을 남기면 체포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전씨의 담배꽁초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전씨 구속 후 경찰서 앞 마당에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개운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폐를 타고 들어왔다.

한영익 기자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광진서 강력4팀 박봉규(33) 순경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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