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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사이즈 침대·냉장고·샤워실…초호화판 교도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을 열고 들어선 복도에는 붉은 카펫이 길게 깔려 있다. 복도 양 옆으로 늘어선 38개의 방에는 깨끗한 리넨 천이 깔려있는 퀸사이즈 침대와 냉장고ㆍ샤워실이 마련돼 있다. 침실에는 차와 과자까지 준비됐다. 레스토랑 안에는 제대로 차려진 뷔페와 꽃 장식이 돼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까지 갖췄다.

관광지 호텔 얘기가 아니다. 이슬람국가(IS)ㆍ알카에다와 같은 테러범들을 전문으로 수용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헤어 교도소의 스펙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일(현지시간) 사우디 알헤어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 6시간 동안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본 르포를 실었다.

교도소의 호텔급 스펙은 시설만이 아니다. 배우자가 있는 재소자들은 ‘패밀리룸’이라 불리는 개인공간에서 최소 한 번 이상 가족 면회를 할 수 있다. 면회시간도 최소 5시간까지 보장했다. 재소자의 가족이 면회를 올 경우 항공료를 포함한 교통비와 숙박비를 제공한다. 재소자가 외국인일 경우에도 같은 혜택을 준다. 재소자 가족에게는 가장 없이도 살아갈 수 있도록 집세와 식음료 구입 비용, 자녀 학자금도 지원한다. 재소자가 교도소 밖 경조사도 챙길 수 있게 했다. 가까운 가족ㆍ친척 중에 장례식이나 결혼식이 있으면 외출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부조 비용으로 2600달러(약 286만원)의 현금까지 지원한다. 단 살인 범죄자는 예외다.

사우디 정부가 교도소 재소자에게 이 같은 ‘특전’을 주는 이유는 재소자 가족의 복지를 위해서라고 WP는 보도했다. 가장인 재소자가 교도소에 갇혀 있더라도, 그 가족은 나라에서 대신 챙긴다는 뜻이다.

알헤어 교도소 관계자는“누군가는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갇힐 수 있지만 그 가족들까지 벌을 줘서는 안 된다”며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이런 환경에 처한 사람들도 돌보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가 국내외 언론과 인권단체에 자국 교도소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사우디 정부가 죄수들을 고문하고 있다는 인권단체의 주장을 불식시키기 위한 지침이다. 알헤어 교도소의 수용 인원은 약 1100명이다. 재소자들은 전원 이슬람국가(IS)ㆍ알카에다와 같은 테러단체와 연관된 범죄자들이다. 사우디 정부가 일반 범죄자뿐 아니라 테러범의 인권까지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교도소를 둘러본 WP의 캐빈 설리반 기자는 “6시간 동안 교도소 내 어디든 돌아다니며 살펴볼 수 있었다”며“교도소 측이 사진 촬영 외에 모든 것을 다 허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국무성과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사우디의 인권지수는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영장 없는 임의 체포와 고문이 만연해 있다. 2013년만 하더라도 79명의 재소자가 교수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간통을 하다 적발될 경우 전통 샤리아 율법을 엄격히 해석ㆍ적용해 사지 절단이나 돌로 쳐서 죽이는 처형 등과 같은 중세시대적 징벌이 자행되고 있다. 최근 사우디 종교단체의 역할에 대해 비판한 글을 올린 한 블로거의 경우 10년 징역형에 태형 1000대를 선고 받기까지 했다.

최준호 기자 choi.joonho@joi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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