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을 부르는 호칭은 무려 33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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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남조선 당국, 관계가 악화 될 때는 괴뢰통치배.

지난 69년간 북한의 신년사를 분석했더니 북한이 무려 33가지의 대남 호칭을 그때그때 남북관계에 따라 다르게 사용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내용은 한국정치학회(회장 최진우 한양대 교수)가 지난달 27일 ‘정치학연구방법론: 현황과 쟁점’이란 주제로 한양대에서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소개됐다. 서울대 박종희(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946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의 신년사 69년치를 자동화된 텍스트 분석 기법으로 통계 분석했다.

북한 신년사에 사용된 대남 호칭은 대부분 괴뢰통치배, 군사깡패, 군사파쇼독재, 남조선호전광, 괴뢰도당,주구,반동파 등 부정적 의미가 강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호전됐을 때는 남조선당국, 집권세력, 남조선 보수당국 등 비교적 중립적 호칭을 사용했다. 당국 등 비교적 우호적 호칭이 사용된 것은 1961년 4·19혁명으로 등장한 민주당 정권 시절,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인 90년대 초반, 1차 북한 핵 위기 해소 이후 김영삼 정부 초기 등으로 분석됐다.

신년사에 나타난 대남 호칭은 2012년부터 다시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은 이명박 정부를 ‘보수집권세력’으로, 박근혜정부를 ‘호전광’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박교수는 6·25전쟁부터 김일성 통치기, 푸에블로호 사건, 핵문제의 발발과 전개 등을 거쳐 김정은 집권 시기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대내외 정세 변화가 신년사에서 사용된 단어의 빈도와 문맥 변화에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지금까지 북한 신년사에 대한 분석은 북한 전문가들에게만 의존해왔다. 그러나 북한 문서가 전자화되면서 인간이 독해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일반인들도 자동화된 텍스트 분석 기법을 활용해 분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전문가들이 주로 신년사를 통해 북한 지도부의 마음을 읽어왔다면 새로운 분석 기법은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관적 해석의 오류를 줄이고 사용어휘의 종류와 빈도 등을 통해 북한의 대외정책 방향 등을 체계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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