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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학생, 이념보다 눈앞 현실에 더 큰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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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학마다 총학생회장 선거가 한창인 가운데 대구시 계명대에서 후보자들이 선거유인물 재활용을 위해 만들어 놓은 수거함에 학생들이 유인물을 넣고 있다. 대구=조문규 기자

대학가에 부는 보수 바람을 대학생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2005년 대학가 보수 바람은 기존 운동 세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라이트(오른쪽)'임을 당당히 내세우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토론에 주저하는 정부를 성토하는 모습 등도 나타난다. 이들의 학내 위상은 총학생회 출마와 당선 등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지난해 본지와 전북대 설동훈, 연세대 한준 교수 등이 전국 2000여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비교분석했던 보수화 경향이 그 실체를 나타낸 듯한 변화다. 지난해 분석에서는 2002년 63.5%에 달했던 진보 성향이 2004년 44.7%로, 24.7%이던 중도 성향이 40.3%로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는 현재 대학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4명의 대학생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대학가의 보수 바람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그들의 답변 내용을 토론 형식으로 정리했다.

▶사회=요즘 학생들의 성향을 정리해 본다면.

▶신의철=사회적 문제보다 현실에 관심을 갖는 경향은 분명 강해지고 있다. 이는 미래지향적인 진보 성향과는 분명히 다르다.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기성 제도와 이념에서 찾으려 하는 성향이 늘었다.

▶박종원=보수의 증가보다 진보가 중도로 변화하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진보적인 젊은 유권자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출범한 현 정부가 대학생들이 기대했던 수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부 출범 당시 변화와 개혁을 기대했던 학생 사회가 서서히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정태호=2000년대 이후 학생운동 세력의 영향력은 전방향에서 약화됐다. 기성 정치판에 짜맞춰 '학생운동의 약화=학생사회의 보수화'라고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대학생들은 사회정의나 거시적 가치관보다는 자기계발 등 개인 중심적 가치 요소를 중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취업이나 고시 등 현실적 성공에 중심을 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에 대한 전략적 지지가 늘고 있는 것이다.

▶김원경=대학생의 보수화는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이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몰(沒)이해에서 비롯된 면이 있다.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은 국제관계, 국내정치, 북한 인권 문제에서 오히려 수구적인 입장을 표명한다. 그들이 수구라고 일컫는 보수 세력은 오히려 세계사의 조류에 보다 적극적이고 북한 인권에서 전향적이다. '진보'라는 개념을 선점당한 자유주의 세력은 수구로 매도당했다. 보수가 '수구꼴통적'인 이미지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대학생들은 보수가 무엇이고 진보가 무엇인지 이해가 부족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기업과 재벌을 비판하면서 가장 가고 싶은 기업이나 존경하는 인물로 삼성전자와 이건희를 꼽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대학생들의 보수화 경향은 진보가 단어 그대로 진보가 아니고, 보수가 진정한 자유주의 세력으로 재평가되는 데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회=보수 바람의 원인을 찾는다면.

▶신=대학 외부 요인으로는 누적되는 청년실업, 줄어드는 안정적 일자리, 치열해지는 경쟁이다. 내부 요인으로는 학생운동 진영이 이에 대응해 새로운 패러다임과 활동 방식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한 것을 들 수 있다.

▶정=학생운동 세력의 약화와 대학 사회의 개인주의, 현실주의화다. 예비 사회 엘리트인 대학생들이 실질적 엘리트로 진입하기 위해 적자 생존의 경쟁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또 세계화 속에서 한국의 경쟁력 강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우호적이게 된다. 현실적인 성공을 지향하는 것은 보수 이념이다.

▶박=개인주의 성향이 고착화하고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시도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취업난과 경기침체 등 현실적 어려움이 겹치면서 진보 성향을 퇴색시키고 있다.

▶김=많은 학생이 진보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하게 됐다. 한총련으로 대변되는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급진적.폭력적으로 투쟁하고, 비민주적.폐쇄적으로 운영됐다.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라는 이슈에서 북한 인권 상황을 대할 때는 이중성을 보였다. 진보 성향을 가진 참여 정부의 성향과 실제 자신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다수 대학생이 진보와 보수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사회=수년 전 등장한 비운동권 학생회와 최근의 보수적인 세력의 움직임은 어떻게 다른가. 학생운동이라 할 수 있나.

▶신=현재 나타난 세력들은 과거 비운동권에 비해 조직적이지만 기존 학생 자치세력과의 연대나 일반 학생의 지지도에서는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기존 세력과의 연대를 추구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그 배후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대중적.자발적 형태의 '운동'수준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학생운동'이라는 단어를 기존 운동권의 선동적 정치 행위로 정의한다면 지금까지 비운동권 학생회들은 학내 복지 중심-대외적 활동 자제 노선을 내세워 학생운동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비운동권이 대학사회에서 성공한 가장 큰 힘이 바로 '탈정치' 노선이었다.

▶박=종전의 비운동권 학생회가 이념보다는 학내 복지에 충실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반면 보수주의 학생운동은 진보주의 학생운동과 마찬가지로 성향이 명백히 구분되는 운동의 개념이다.

▶김=비운동권은 한총련식 통일 논의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볼 때 기본적으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애착을 가진 일반적인 보수 성향을 가진 학생들이었던 같다. 과거 독재시대의 민주화 운동처럼 보수적인 이념을 내걸고 대한민국의 좌경화에 맞선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회=학생들의 전반적인 반응은 어떤가.

▶신=어느 쪽도 탐탁지 않아 한다. 진보 진영의 경우 방향은 옳을지 모르나 현실감이 떨어지고 보수 진영의 경우 '반운동권'이라는 안티 테제 이외에 구체적으로 내세우는 바가 없다.

▶정=요즘 대학생은 학생들의 권리를 대표하는 조합적 의미의 학생회를 원한다. 따라서 보수든 진보든 학생들의 권리를 가장 진실하게 대변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이념 대립은 학생들의 기준에서는 선거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

▶김=수십 년간 지속된 한총련 계열 운동권 학생회의 장기 집권과 일방적인 정치선동,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 등으로 학생회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했다. 새로운 대안세력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던 학생들은 보수주의적 정책을 접하면서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기존의 무관심에서 참여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박=정치권에서의 보수와 진보의 대립구도에 학생들은 식상해 할지도 모른다. 대부분 학생은 어떤 이념을 가지고 선거에 참여했는지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회=현재의 학생회가 가장 급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신=대학인이 대학에 오는 이유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학생회는 대학인들의 고유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대학교육의 부실화와 파괴현상을 막아야 한다.

▶정=대학 사회 내부에 민주적인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등 학생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김=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보수주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러한 일들은 학생들에게 보수와 진보를 제대로 구분할 줄 알게 하는 데서 시작된다.

▶사회=보수와 진보의 공존을 위해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가.

▶신=무엇보다 보수 진영의 '커밍아웃'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와 대학 사회의 나아갈 바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은 채 '운동권에 대한 반감'만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정=서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정립하고 그러한 다양한 정체성들이 대학사회 내에서 다양한 소조직체들로서 공존할 수 있다는 사고를 견지하면 된다. 진보가 한총련 식의 권위주의적 학생운동을 지향하고 보수가 조갑제 식의 수구적 좌경용공 공작을 일삼는 구시대적 발상을 보인다면 서로 간의 공존은 불가능할 것이다.

사회.정리=임장혁.백일현 기자<sthbfh@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