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미국인 되는 게 한인사회서 가장 중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준 최가 8일 미국 뉴저지주 에디슨시 시장에 당선된 직후 지지자들에게 답례 연설을 하고 있다. 에디슨(뉴저지주)=남정호 특파원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의미에서 완전한 미국인이 되는 것입니다."

8일 미국 뉴저지주 에디슨시 시장으로 뽑힌 준 최(34.한국명 최준희)씨. 그는 "내가 한국계임은 분명하지만 그에 앞서 미국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동포로 미 본토에서 첫 직선 시장으로 선출된 것도 이런 좌표 설정에 힘입은 것이리라. 그의 주변에서도 '세탁소집 아들로 성장해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낸 한국의 아들'이라는 점을 내세웠으면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에디슨시는 인구 10만여 명에 연간 예산이 1억 달러, 공무원은 약 1700명이다. 시 업무 인수작업으로 바쁜 그를 13일 에디슨시 선거대책사무실에서 만났다. 미혼인 그는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내가 최고의 한국계 신랑감으로 올랐더라"며 웃으며 얘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미국 땅에서 동포들이 진정한 미국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일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포들끼리 몰려다녀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정치 입문 배경에 대해 그는 "원래 꿈은 우주비행사였지만 변화를 주도하며 사회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 정치로 방향을 틀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미국 내 한인 젊은이들이 요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 쪽은 여전히 미진하다. 그 틈을 메우고 싶다"고도 했다. 대만은 노동장관, 일본은 상원의원까지 배출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결국은 아시아계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서 백인들과의 갈등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정치는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을 포용하는 과정이다. 에디슨시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화합의 시정을 펴 나가면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본인 생각과는 다르겠지만 한국계, 나아가 아시아계의 기대가 크다.

"많은 아시아계 주민이 밀어준 데 대해 진정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투표자들의 80%가 백인이었고, 나는 이들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았다. 내가 아시아인이었기에 당선된 게 아니다. 에디슨시가 안고 있는 교육문제.교통난 등 현안을 잘 풀어낼 것으로 유권자들이 판단했기 때문에 뽑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정치 철학을 갖고 있나.

"40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꿈꿨던 것처럼 누구든 인종에 관계없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 지금 미국 사회는 그런 쪽으로 나가고 있다. 나 자신이 다양한 인종에 의한 정치를 보여준 케이스로 생각한다."

-한국계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매사에 한계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한국계 미국인이라기보다는 미국인 자체로 봐 달라. 어렸을 적부터 갖가지 배경과 문화를 지닌 다양한 사람과 잘 어울려 지냈던 터라 별문제 없었다."

-한국인의 가치관에 대해서는.

"부모님들이 이민 초기에 자식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셨다. 진정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가족과 봉사의 중요성, 책임감, 근면성 등 소중한 가치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한국인뿐 아니라 다른 집단에서도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이다."

-동포 정치 지망생에게 충고를 한다면.

"한국계든 중국계든 진정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선 정치를 포함해 모든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향후 계획은.

"한국 언론이 자꾸 장래의 포부를 묻는데 정치인은 현직에 충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 신뢰가 없어지고 자연 미래도 사라진다. 지금은 최고의 시장이 되는 일만 생각하고 있다."

◆ 준 최는=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왔다. 그래서 한국말도 아주 서툴다. 에디슨시의 JP 스티븐스 고등학교를 다녔다. 고교 시절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딸 정도로 항공기에 관심이 많았다. 동부의 명문인 MIT대에 들어가 우주항공학을 전공했다. 2000년 빌 브래들리(민주.뉴저지) 상원의원을 만나면서 인생 행로를 정치로 바꿨다. 한인 1.5세들을 묶어 '코리안아메리칸 시민운동협회(KALCA)'를 결성한 것도 이 무렵이다. 2001년 제임스 맥그리비 전 뉴저지 주지사의 선거 참모로도 뛰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