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남은 2년이 너무 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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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대통령 주변에는 왜 그런 사람들만 모여 있는지 보기에도 딱하다. 사람을 골라도 꼭 그런 유의 사람만 고르는 것 같다. 안에서 할 말과 밖으로 나가도 될 말을 구별하지 못한다. 청와대 참모나 장관은 나라를 대표하여 앞에서 끌어가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말의 수준에 따라 나라의 격이 올라갈 수도 있고, 국민의 정신이 고양되기도 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따뜻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정권 사람들의 말은 왜 그리 뒤틀리고, 천박한지…듣는 사람들이 오물을 뒤집어 쓰는 것 같다.

이런 참모들을 대통령은 잘했다고 부추기고 있다. 대통령과 참모가 컴퓨터 앞에 앉아 댓글을 주고받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렇게 할 일이 없을까. 우리 귀를 더럽히고, 격을 낮추는 이런 말들을 앞으로도 2년이나 더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앞으로 남은 기간이 너무 길다는 한탄이 나온다.

권력 야심가들은 이미 다음 대선 싸움으로 들어갔다. 선거가 눈앞에 닥친 분위기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재선 패배를 어떤 식으로 반성하여 어떻게 나라를 끌고 가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가면 남은 2년 노무현 대통령은 절름발이 오리(Lame Duck)가 아니라 죽은 오리(Dead Duck)가 되지 않을까. 죽은 오리 밑에서 나라는 방향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과연 이래도 이 나라가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러니 이렇게 흘려보낼 남은 2년이 너무 길다는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란-콘트라 불법무기 판매 사건으로 레이건 대통령도 임기 2년을 남겨놓고 거의 죽은 오리가 됐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소생하여 20세기의 최고 대통령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그가 남은 2년에 한 일은 복지 개혁 완성, 캐나다 자유무역협정 체결, 누적된 13개 예산소요 법안 통과, 소련과 핵무기 협정 개정, 대법관 임명 등등이다. 임기 2년 전 37%였던 최악의 지지도가 물러날 때는 68%로 올랐다. 그가 이렇게 소생할 수 있기까지 그동안 친숙했던 비서실장을 포함해 참모진을 내보내고 서먹하지만, 새 인물로 교체했다. 야당과의 관계도 복원하여 법안 통과에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중서부 한발지역을 돌아보고, 경제문제만은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하고, 기자들의 질문은 민심이라 여기고 세심한 귀를 기울였다.

연극과 비교하자면 노 대통령은 도입과 전개를 끝냈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스토리 전개와는 전혀 다른 반전을 시도해야 할 시기다. 이 반전을 통해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막을 내려야 한다. 이제는 끼리끼리의 친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드가 같은 인물끼리 둘러앉아 아무리 논의를 해 봐도 생각은 하나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386을 포함해 친숙했던 참모들을 완전히 새 사람으로 교체해 보라. "저건 노 대통령 식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게끔 인사를 뒤집어 보라.

야당과의 관계도 반전을 해 보라. 말도 안 되는 대연정을 호소할 것이 아니라 국회 틀 안에서 야당의 협조를 구해 보라. 미워하던 언론과도 반전을 해 보라.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것이 국민의 소리라면 무슨 얘기든 듣겠다고 발상을 바꿔 보라. 그때부터 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지지가 올라갈 것이다. 2년이 너무 길다던 한탄의 소리가 2년이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으로 변할 것이다. 그 클라이맥스에서 감동을 남기고 축복을 받으며 무대를 떠나 보라. 이런 멋진 전환을 해보고 싶지 않은가.

문창극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