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학 졸업한 딸, 유학 폭탄선언 … 노후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금융회사 직원 김모(54·경기도 고양시)씨는 세 자녀를 모두 대학에 보냈다. 막내가 올해 3학년이다. 그런데도 자녀 교육비로 월 400만원이 든다. 큰딸(26)은 독립했지만 둘째 딸(25)은 유학 중이다. 대학을 나와 직장에 다니던 둘째는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반을 호주에서 지내다 현지 대학에 다니겠다고 했다. 김씨의 월급이 650만원인데 둘째 유학비와 막내 등록금만 수입의 60%에 달한다. 그는 “일단 대출로 막고 갚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내가 어렵게 대학을 다녀서 아이들 공부는 어떻게든 밀어주려 하지만 노후 가 캄캄하다”며 “ 신세가 왜 이렇게 됐나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존 대출금도 6000만원이 있다. 그는 “정년이 60세로 연장되지 않았으면 암담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입 에 ‘올인’하던 부모들은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면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대입이 끝이 아니다. 과중한 교육비 부담에 허덕이는 40·50대 시기를 지나더라도 성인 자녀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50·60대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해 서울·광역시 거주 성인 2300명을 조사한 결과 만 20세 이상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40·50대가 54%나 됐다. 60·70대도 18%가 돈을 보태준다고 했다. 이 때문에 31.9%가 환갑이 다 돼 자녀가 결혼한 이후에야 실제 은퇴를 준비한다고 응답했다.

 반퇴(半退) 이후의 노후 준비가 늦어지고 있는 배경엔 청년 취업난이 있다. 4년제 대학을 나와 아직 취업을 못한 허모(25·여)씨는 필리핀과 미국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한 뒤 다시 미국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 총 6000만원이 들었다. 허씨는 “농사짓는 부모님이 비용을 대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쓰는 걸 보면 안타깝지만 취업해야 보답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성인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나지 않은 채 동거하는 기간도 덩달아 늘어난다. 2013년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자녀와 사는 60세 이상의 47%가 “자녀의 독립 생활이 불가능해 동거하고 있다”고 답했다. 윤원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50대 베이비부머 세대는 부모를 부양하는데 자녀도 독립을 안 하는 샌드위치 신세”라며 “부부가 먼저 자녀 지원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탁·윤석만·김기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