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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상대 세력을 인질로 삼은 조훈현의 역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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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 왕시 5단(중국) ● . 조훈현 9단(한국)

고수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수를 잘 내는 형'과 '중심을 잘 잡는 형'이 그것이다.

사카다 에이오(坂田榮南) 9단, 조훈현 9단, 이세돌 9단으로 이어지는 면도날 감각의 기사들은 수 내기에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또 린하이펑(林海峯) 9단, 이창호 9단 쪽의 라인은 어떤 경우에도 중심을 잘 잡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 판에 등장한 왕시(王檄) 5단은 '이창호 과'에 해당한다. 번득이는 묘수보다는 균형과 형세 판단을 먼저 떠올리는 형이다.

장면1=형세는 팽팽하다. 백이 약간 두텁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면은 종반으로 접어들기 직전이고 우하 일대를 어떻게 결정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우하가 결정되면 바둑은 곧장 끝내기로 접어들 것이다.

왕시는 백?로 젖혀 93까지 중앙에 약간의 벽을 만든다. 우상 쪽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측면도 있어 이런 식의 공격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지만 왕시가 이를 결행한 이유는 바로 94 때문이다.

중앙 세력을 배경으로 94로 파고들면 흑은 수비에 급급할 것이다. 즉 흑은 A 언저리를 지키지 않을 수 없고 그때 B 정도로 에워싸면 미세한 가운데 백 우세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94는 백?부터의 수순을 모두 생략한 채 곧장 두는 것이 더 좋았다. 조 9단의 대응책이 너무도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장면2=놀랍게도 조 9단은 독수리처럼 허공을 날아올라 95로 백의 뒷덜미를 물어뜯으려 한다. 조훈현이란 사람이 아니면 떠올리기 힘든 강수.

왕시가 말도 안 된다는 듯 96으로 반발하자 이번엔 97로 하나 젖혀두고 99로 뚝 끊는다. 가만히 보니 조 9단은 백의 원군들을 오히려 인질로 삼고 있다.

이때 인질을 모두 살리려 한 백100이 무모했다. 백 C로 죽 몰아 석 점을 버리고 두었다면 아직 긴 바둑이었다.

이젠 흑이 공격할 차례. 다음 한 수는 어디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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