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병 변호인 "잘못된 부대관리가 범죄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기욱 변호사

동료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살인마인가, 아니면 잘못된 군 문화의 희생양으로 볼 수 있는가.

지난 6월 8명의 전우를 숨지게 한 혐의(상관살해 등)로 구속기소된 김동민 일병에게 사형이 구형된 것과 관련, 김 일병의 변론을 맡은 이기욱(50) 변호사는 9일 "김 일병을 죽이면 한(恨)은 풀어질지 몰라도, 죽이는게 끝은 아닐 것"이라며 사형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변호사는 이날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평범한 젊은이가 이런 범죄를 저지르도록 방치한, 잘못된 부대관리가 근본적인 문제"라며 "(김 일병에게) 생명을 빼앗는 사형보다는, 종신형 등을 내려 반성의 기회를 주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범행에 사용된 총기나 수류탄 등에서도 김 일병의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며 "이번 사건이 김 일병 단독범행인지 여부를 놓고 유가족 사이에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 법무관 출신인 이 변호사는 고등군법회의 군판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85년 당시, 총기난사로 동료 부대원 8명을 숨지게 한 박모 이병에 대해 원심을 확정해 사형을 선고했다. 한편, 김 일병은 지난 8일 진행된 공판에서 최후 진술을 통해 "내가 죽어서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다음은 인터뷰 전문.

- 군검찰이 김 일병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는데.

"전우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극형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사형시킨다고 해결될 일이냐. 범행동기도 단순히 '집에 가기 위해서'였다. 불안한 정신상태의 김 일병이 GP라는 고립된 섬에서 나가기 위해 저지른 사건인 셈이다. 간부들이 이를 알고 김 일병을 후방으로 보냈다면 이런 일이 생겼겠나. 사형에 처한다면 유가족의 한(恨)은 조금 풀어지겠지만, 죽인다고 다 끝나는게 아니다. 또 이 사건이 김 일병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것은.

"우선 범행에 사용된 탄창.총.수류탄 안전 손잡이 등에서 김 일병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다. 목격자도 없다. 또 병사들이 누워있던 방향으로 미뤄볼 때 이들의 발목이나 발바닥에 수류탄 파편 등에 의한 상처가 많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수류탄을 덮치고 숨진 것으로 알려진 박모 상병은 자신의 침상 반대편에서 숨졌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뭔가 상황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일부 유족들도 이런 의문점을 들어 단독범이 아닐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 김 일병은 범행을 자백하지 않았나.

"그렇다. 김 일병이 범인이 아니라는게 아니라,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 아닌가.

"우선 난 사형폐지론자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보다는 종신형을 선고해 김 일병을 깊이 반성시키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김 일병도 최후 진술에서 '자기가 죽어서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길 바란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 사건 직후에는 별로 반성하지 않는 것 같다.

"원래 말이 적다. 또 김 일병은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을 거다. 유가족들이 '죽여라','살려라'하는. 정신적인 충격도 받았을 것이다. 우리 같으면 거짓으로라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을텐데."

- 김 일병의 최후 진술을 보면 사형선고를 예상한 듯 하다.

"극형을 피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김 일병 부모님도 그렇고. 부모님 두 분 모두 아들을 찾아오신 적이 없다. 법정에도 못 오시고…."

- 살아남은 동료들에 대한 김 일병의 반응은.

"별로 내색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 대해선 어느정도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 일병이 원래 악독해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컴퓨터 게임을 탓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 당시에는 아무런 현실감도 없었을 것이다. 김 일병보다는 허술한 부대 관리가 이 사건을 이렇게 키운 것이다. 실탄을 가진 사람이 아무 제지없이 내무반을 드나드는게 더 문제다."

- 전우를 믿고 잠을 잘 수도 없다는 것인가.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만, 총을 가진 사람이 외부에서 침투할 수도 있고 불평이나 불만을 가진 병사가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을 봐라. 치고 받고 싸우다가 홧김에 뛰어내리기도 하고, 흉기를 휘두르기도 한다. 총과 실탄이 바로 옆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이건 굉장한 차이다."

- 군판사 시절 김 일병 사건과 비슷한 사건에 대해선 사형을 선고했는데.

"고등군사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당시 원심에서 사형선고가 내려진 사건이었다. 고민도 많이했지만 결국 피해가 너무 커서 원심을 유지했다. 그때 그 판결이 최선이었는지는 지금도 생각해보고 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사건이 언론 보도도 안됐고, 유가족이 재판에 들어온 적도 없다. 하지만, 김 일병에 대한 사형으로 군대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GP라는 특수 상황이나 남북대치에 따른 긴장감도 감안해야 한다. 후방이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사형이 내려지면 항소할 것인가.

"본인들의 판단사항이다. (항소 여부는) 변호사의 권한이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